2014년 11월27일 경남문화융합아카이브 연구에서 경남정신 초안을 마무리하며
나는 경남의 문화원형이 사라지는 이유가 도시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문화원형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현재의 문화 인식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지닐 것을 요구한다.
경남의 문화사를 분류하여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로 분류하고 통영정신을 먼저 분류하였다.
그리고 사천정신을 분류하고 남해정신을 분류했다. 그 다음은 밀양정신을 분류하고 문화원형의 가치를
확인하였다. 진주정신 역시 마찬가지고 창원정신, 마산정신, 진해정신, 하동정신, 의령정신, 거제정신, 고성정신, 합천정신을 골고루 살폈다. 나름대로의 결이 생겼고 방향성도 잡았다.
하지만 문화원형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개발로 인해 당연히 보호되어야 할 유, 무형의 전통문화자산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의령의 경우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의령신반대광대가 지금은 누구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동동에서 만난 어르신도 얼마 남지 않는 자신의 생을 예감하셨는지 1930년대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학자들이 의령대광대 관련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자신의 조상들이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에 숨겼다고 했다.
가슴이 아팠다.
진주의 형평운동 생각이 났다.
다시 강상호, 강영호. 신현수, 이학찬, 장지필로 돌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조선유학사를 톺은 다음에 근현이행기의 경남정신을 톺아야 하는 이유를 의령에서 찾았다고 보아야 하나....
최근까지도 천민이나 딴따라로 불려 그들의 자녀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의령을 떠났고
설움을 겪어야 했다.. 의령정신을 톺는 이유는 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딴따라 이야기를 그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의령이 없었다는 데서 의미를 지속적으로 찾고 의령정신 속에
녹아내야 할 것이다. 내가 의령을 가는 이유다.
점이지대의 의령에서 문화예술, 그리고 그것에서 평등정신을 발견했다.
어디 예술가들 뿐이었겠는가?
백정들 역시 천민으로 인간대접을 못받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그들의 신분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것이 현실이고....현재 진행형임은 분명하다.
지역정신을 내가 지속적으로 찾고 전통문화유산을 증언해 줄 사람을 찾는 이유는
이것을 깨트려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철학과에서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루도 잊지 않고
실천으로 그것을 실행하고자 했던 이유도....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을 그가 저술한 '문화와 가치'에서 찾으려는 이유도
바로 문화의 가치가 정신에 있음을 밝히고
윤리적 책무를 실행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동학들과 다른 사고를 갖고 철학함을 보려고 노력했던 이유도....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서도 그들과 달리 정신을 강조하고 정신은 쓸모없는 것이니 그것 말하지 말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놓지 않으려는 이유도 바로 평등이다.
나는 통영정신을 통해 호국정신, 평등정신, 장인정신을 말하고 있다.
평등정신을 진주와 의령에서는 어떻게 풀지 고민하지만 결은 한가지다.
주저리주저리...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호국정신, 평등정신, 장인정신을 경남문화사의 핵심으로 삼는 이유...
문화는 꿰어야 보물이 된다. 즉,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의 정신문화 자산은 그것이 무엇이든 보물이 되어야 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부각시킬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말해야 한다.
경남 최초로 발생했던 운동들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배척당했던 그들의 후손과
그들을 지지했던 인물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고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