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에서 레비나스로 그리고..........주저리주저리
내가 정인홍에 대해
사극이 아닌 학문적인 관점에서
접하게 된것은
철학과 석사과정 1학기때 한 선생님과
경남지역 유학사를 이야기하면서였다.
평소에도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은 내가
경남의 소소한 이야기를 상식으로
알고 있으려고 노력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 대학원 열람실은
자신의 연구분야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는 공간이기도 했고
각기 다른 학문을 연구하면서
학문과 학문간의 통섭 내지는
융합을 경험하는 공간이었기에
다양한 교류가 가능했었다.
특히
각자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몇 몇 선생님은
열람실이라는 공간에서
각자 연구 분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의심과 데카르트 의심이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한나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전체주의'를 읽으면서
홀로코스트와 인간의 잔혹함,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회도 이해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그 선생님은
정인홍의 사상을 아주 심도있게 연구하던 시기였다.
철학입문 초보자인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전문가였던 것이다.
나는 기껏해야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면서
철학적인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고
전공분야인 언어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두꺼운 분석철학 관련 서적을 읽고....
레비나스의 타자개념과
후설의 현상학을 접하면서
지향성을 공부하고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을 이해하기 위해
도서관 모퉁이에 앉아서 책과 씨름하였지만
분명 우리말과 글로
번역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뭐 그런 시기를 보낼 때 그 선생님은 조선유학사를 줄줄줄 ~~~줄줄이 소시지
뽑아내듯 쉽게 풀어내었다.
내가 영국경험론과 대륙합리론의 제문제들...
17세기 서양철학의 제문제들...
과학철학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것도
난파선을 만난 듯 시행착오를 겪고 있던 시기에
그 선생님은 학자의 길을 가기 위해 차근 차근 기초를 다져
무너지지 않을만큼의 내공을 쌓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를
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우왕좌왕할 때
그 선생님은 이미 남명의 사상 계보와 업적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전공한다고 하면서도
비트겐슈타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잘 하지 못하던 때에 그 선생님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 뽑듯이 남명의 계보를 줄줄줄줄 풀어냈다.
비트겐슈타인의 의심을 "확실성에 관하여"를 통해 단 한 마디로 정리하였는데 "이 세상에는 의심할 수 있는 확실성이 있고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말을 해야지 말 할 수 없는 것을 자꾸 말하려 하면 수많은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갈등.....
그 갈등이 어떤 윤리적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내가 고민하는 것을 철학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어 비트겐슈타인의 연장이 아닌 레비나스 윤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하여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내가 열람실에서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논문들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고민을 풀어나가던 시기에 그 선생님은 박사학위 논문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누가 더 늦게 열람실을 나가는지 내기라도 하듯 우리는 참 열심히 연구라는 것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학문 영역에
잡식성이 강한 나는 아직도 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선생님은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역에서 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