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 70년사 꽃을 피우다/서제
개천예술제 서제문 1958-1981
윤동주비트겐나스글나라
2021. 10. 3. 23:25
개천예술제서제문을 본 저서의 부록으로 실은 이유는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없는 후행연구자들에게 연구의 다양한 관점을 통한 연구 확대를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현대축제의 효시 개천예술제- 재맥락화로 축제이론을 세우다-, 저자: 안영숙
부록
부록 3. 개천예술제 명명기 취지문 일부(1958-1981년)
제9회 (1958년 11월 13-18일) |
거칠고 어지럽게 소용도린 나롯목 한 平生을 건너 보아도 沙工의 말은 같았을 것이다. 「건너보아도 건너 보아도 언제나 처음 건너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미 여덟 번을 치러서 아홉 번째의 祭幕을 열게 된다. 6月의 봄바람을 아니 겪었던들 政府세운 나이와 함께 이번으로 열돌 맞이를 했을 것이다. 몰라서나 번연히 알고 있다면서도 왼만히 터전이 잡혔을 거라고들 한다. 10년이면 山川도 변한다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다. 결단코 그런 형편이지 않다. 祭業의 뜻과 모습을 區區히 설명할 필요가 이젠 거의 없어 졌다는 것, 祭器에 담겨지는 祭需들이 해를 따라 절로 豐盛하고 多彩롭게 華麗하여졌다는 것을 아니 랄 순 없다. 그러면서 祭幕의 舞台 뒤에서 겪어야 하는 구비구비와 매디 매디가 숨 가쁘고 목마르고 뼈저리긴 매양 새롭다기 보단 한결 區區難說일 뿐인 것은 어인 까닭일까. 祭僕들의 德과 精誠과 聰明과 勤勉이 갈수록 어리고 적은 것을 느끼는 反面에 실로 갖가지의 어려움을 숨기면서 祭燭 하나씩을 밝혀 주시기에 致誠하여 주심의 恩惠야 말로 莫重한 것이라 하겠다. 貧者의 一燈이 富者의 萬燈이라 하셨다는데 그렇듯 생각하면 線南에 깃들여 사는 배달겨레 二千萬의 開天主에 받드리는 祭燭이 모여서 이 일은 이룩되고 있다. 우리 祭僕들은 昭陽江을 거슬러 春川의 흙을 빌어 왔고 鳴梁水浹 건너 가선 濟州의 검은 흙과 極南西歸浦에 해뜰 무렵인 少年을 시켜 푸른 東海물 길러 왔으니 박달한아배 첫나라 세우실 때 있던 사람도 새 즘생도 고기도 나무도 달라졌으려니와 無數한 바람비와 歳月속에 오로지 그날처럼 남아 있고 바위가 허물어 흙이 되고 흙이 더욱 썩어 차라리 구수히 향기로운 서울과 9道의 國土를 祭物하여 四千年 祖上의 뼈가 썩은 그 위에 不滅히 살아 노래하고 춤춤의 榮光을 告하려 함이요 흘러서 永遠토록 쉼이 없는 높은 목숨의 情熱과 波動을 上烝하여 새로 꿉은 술병에 짜디 짠 東海물을 담아 받드리려는 것이니 하늘 푸르게 열려 있어 窓을 닫지 않고 이땅이 검고 깊게 썩어서 기름진 터에 草木이 삶을 누리고 물이 그 가슴에 사랑을 품어 안팎으로 목숨들을 가꾸는 동안 歷史의 朔風과 찬서리가 비록 한때 미치고 慈悲롭지 않날지라도 百番 一千萬番 이땅에 태어난 運命을 지키고 믿으며 살아 갈 것을 다짐 두는 것이오 이 작은 祭業에 無知와 비겁과 인색의 재앙됨이 있달지라도 바람도 서리도 구름도 모든 슬픈 毒虫의 무리도 맑게 개인 太陽의 無窮蒼大앞에 도리어 가셔질 것에 不過함임을 믿을 뿐이다. 다시 맞을 이날은 祭齡 10年! 한아배 하늘 열어신 4292年! 마흔 두척 아홉치 두푼 높이의 돌塔을 南河기슭 城뚝 아슬한 자리에 세워서 당신의 榮光과 살아 있는 겨레의 歸一과 崇仰과 다함 없는 展開的 歷史 意慾을 象徵하고저 한다. 그 開天藝術塔의 建立을 主務하여 社團法人開天藝術事業會를 만들었다. 올해 祭務를 끝내고는 다시금 江山의 坊坊曲曲으로 동양승이 될 것이다. 木鐸도 바랑도 없다. 불탄 자리에 촉석의 樓骨이 다시 일어서고 開天塔과 그것아 晋陽城뚝 하늘 높이 마주 설 다음 오늘을 생각하면 소리없이 모두 念佛하고 싶다. 延 50萬의 集會祭軍과 同血一切의 民族祭軍 위에 입은 淸明으로 祝福을 베프라. |
제10회 (1959년 11월 3-8일) |
지금 막 西歸浦 앞바다에서 해뜰 무렵에 東海물 한병을 떠다놓고 祭齡 10年의 人事 아닌 所懷을 起草한다. 昭陽江 건너 江原道 春川의 흙과 울뚜목 건너 와서 濟州 漢拏의 검은 火山흙까지 首都와 南韓 9個道의 水陸을 두루 다녀 내손으로 國土와 東海물을 다 얻었으니 祭神 檀君님께 祭僕의 基本致誠이 된 것이다. 쉴새 없이 交流하고 晴雨가 無常한 동안에 祖國바다의 물이야 매양 그때 물이라 마는 더구나 바닷물은 五大洋이 하난지라 부딪히는 海岸의 波濤소리는 그때 같고 이 한줌 흙 속에 四千三百年肇國 以來의 눈물과 사랑과 風霜과 더불어 一切 살아 있던 草木 벌레까지 祖上 累代의 墳土인 것이니 그 주검으로 하여 우리 살아 있음에 至恩함의 證人이요 子孫累萬代를 믿어서 委託할 터전이 또한 이 國土인 것이다. 創祭때부터도 開天의 날로써 祭期하고 開天으로서 祭魂으로 하기를 이름도 開天일까 했었다가 傳統을 못 세울까 저어했던「嶺南」의 9年 祭名을 이번 즈음에 바로 모셔 開天으로 定했다. 어느 누구 따위의 地上名詞보다 겨레의 어림없는 最高 榮光을 이름함이오 人類 久遠의 悲願을 이름함이요. 一刻도 그 믿음없이 살아 있지 못하는 至貴한 이름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 I0年 協祭의 積恩하신 德擇이고 더욱 밀고 이끌음을 힘 입어서야 우리 藝術史上의 새로운 烽火運動 곧 어둠속의 開天藝術運動은 抱負 한 바의 救國的 보람과 이어질 것이다. 10年을 닦아 왔으나 決斷코 定礎가 되었다는 自負가 서지 않음이어 해마다 당하면 200數 機關을 坊坊曲曲히 托鉢 相對하기란 乃乃苟且하기만 하다. 이제 感激보다는 훨씬 原質的인 것! 싸늘한 信仰 같은 苦行의 길이 고개와 숲사이 오솔길처럼 하얗게 길이 나서 보인다. l0年 事業 報功紀念으로 開天藝術塔의 建立을 立志한 바 되어 昨年 9回때 起工했었고 올해 序祭 다음에 除幕하기로 作定이었다. 全北 황둥 石山에선 이미 採石이 다 되었고 南江 城뚝의 아스라한 絶壁을 깎아 꽤 널따란 開天藝術塔公園의 基地工事도 끝이 났으나 主宰하는 일꾼이 스스로에 事故있어 11回때 除幕키로 作定이 되었다. 一部 原石이 現場과 驛에 왔으니 곧 石手의 정소리가 울려날 것이다. 全 겨레의 범위에서 會員을 모아선 四千三百年 肇國者의 이름으로 同胞 모두의 돌 한덩이가 쌓여진 半百尺의 未曾有한 藝術塔이 祖國 하늘에 비롯 蹶立하게 할 것이다. 近年에 와서 地平위에 들어난 西歸浦 濟州 全州 光州 大田 淸州 仁川 安養 大邱 慶州 密陽 馬山 泗川 等地의 同志運動에 더욱 發展있기와 이땅에 움트난 모든 젊은 藝術의 싹들에 날로 싱싱한 成長 있기를 빌고 10年 동안 物心藝의 三方面으로 도와주신 有無形의 莫望한 協助 및 同苦的 京鄕 各界의 功勞에 感謝와 慰勞의 뜻을 表하여 祭運의 오늘 있기를 한결같이 冥助하신 檀君在天이 英靈에게 無言의 合掌을 드리고 싶다. 풀밭과 흙속에서 부터 일어나야 하는 참다운 民主文化運動이 작은 典型的으로서 傳統化된 이 일을 끝내 지키기와 가꾸기에 있는바 誠實을 다할 것을 實務同志들과 더불어 삼가 盟誓함으로써 報恩의 萬一을 期하고자 한다. ※ 京鄕 各界의 輿望과 本 行事의 基本精神과 鄙會 第11回 定期總會의 決議에 依하여 今年 第10回 舊名 嶺南藝術祭를 開天藝術祭로 改名하였음. (@ 볼드 유지해주세요.) |
제11회 (1960년 11월 21-26일) |
藝術로서 받드리는 열한번째의 開天祭를 모시게 되었다. 열번째에서 이번째에 이르기까지의 3,4月달 꽃피는 계절에는 젊음과 義의 꽃다움들이 봉진채로 꽃져간 革命의 바람이 휘몰아 갔다. 그래서 革命의 올해에서 이 祭宴은 베풀어진다. 大韓民國 獨立 돌맞이 해의 舊力開天날에 비롯했던 祭齡이 10年을 지나서 山川 아닌 나라가 새로히 되었다. 그래서 第2共和國의 誕生을 自祝하는 祭祀를 겸하는 것이고 第2共和國을 祭壇에 모신 開天祭인 것이고 새나라 배숱어 아이 낳기에 苦痛과 피흘림을 겪어주신 革命殉節의 英靈에 반드리는 慰靈祭인 것이고 다시는 젊음과 피묻은 꽃조각이 휘날리는 殺風의 매서운季節을 人民모두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山城의 바위 바위를 받들어 올려서 막으려는 誓約祭인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의「시지프의神話」적 苦役은 산 하나가 아니라 산 두나인 것이니 온전한 人民 個自에서 부터의 心靈革命과 나아가서 北으로 잃은 것을 돌려 받기 위한 山外山路인 것이다. 썩어 너머진 罪惡政權의 나무 뿌리 밑에서 다시금 그「사탄」의 과일나무가 돋아 오르지 않으리란 保證이 分明히 서는 것은 아니기 까닭이다. 그들이 해를 가리웠던 12年을 回顧해 볼 때 우리 祭運의 崎區했던 가시덤불 길과 숨가쁜 고개 고개길을 聯想하지 않을 수 없다. 地表面과 地下의 陰陽에 걸쳐서 反革命의 더러운 手足들이 우리의 成長과 開花와 結實을 억누르고 가로막기에 術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면 切齒의 情이 새로워진다. 정 그렇다면 彰烈祠 앞에 祭燭 한자루 밝혀 놓고 香盆 하나 香피워 놓고 찬물 한그릇 떠 놓고는 노래하나 부르는 이 있을 것이고 祭文하나 읽는 이 있어서도 한回의 불을 꺼지 않을 수를 궁리하기 까지의 비장한 각오를 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祭運은 해를 따라 繁榮을 거듭하여 오늘의 盛林을 이룩하기에 이르렀다. 晋州城 안에서 열린다 뿐이지 結緣되시고 參集하는 祭軍은 首都와 南韓 9道의 全部에 뻗쳐 있고 바다 건너 日本의 僑胞와 다시 太平洋 저쪽에서 10餘個 民族의 兒童作品까지 參加했고 이일이 필름에 실려서 外國으로 紹介되고 電波에 실려서 連6日동안 全國에 울려가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이 꽃 씨앗이 同志 文化運動의 마음밭에 風媒된바 있어서 이제는 各道마다 北엔 江原道 南엔 濟州 西歸浦(까지) 때를 달리한 同志祭事로서 展開되고 있으니 얼마나 榮光될 일이겠는가! 더구나 濟州와의 藝緣不忘을 紀念하여 漢拏山下 五賢校庭에 세워진 濟晋兩州藝緣紀念碑야말로 옛 耽羅의 王나라와 白頭靈峰 솟은 本土와의 사이에 울두목 건너서 永世의 心結을 굳게한 것이다. 올해부턴 主催體인 晋州文總도 一人責任에서 集團責任으로 自家 革命體制를 갖추어 首都와 各道의 國土와 東海물 및 祭誠 托鉢을 五路로 分班해서 모아왔다. 國土와 東海물 (西歸浦 앞바다 해뜰무렵 물 한병과 各道 道廳안의 흙 한줌식)은 4293年前 檀祖肇國創祭 그때의 그것이오 連綿 배달祖先의 지금도 살아 떠도는 피와 살과 뼈와 얼의 거름이오 젖가슴 그대로이다. 올해부터 景武台의 흙도 떠 왔다. 天地와 祖國과 同胞와 鄕土에 받드리는 感謝祭이기도 하다. 瞑目合掌. |
제12회 (1961년 11월 10-15일) |
檀君이 創建한 아름다운 江山이 우리들의 祖上의 잘못으로 祖國을 잃고 慘酷한 괴로움을 當한지 40年째 다시 나라를 찾게 됨을 紀念하기 위한 舊歷開天節에 際하여 거룩한 藝術의 祭典이 史都 晋州에서 이루어진지 12回로 접어 들고 오늘 祭宴이 베풀어지게 되었습니다. 더욱이나 軍事革命으로 이나라가 바로 잡히게 되고 우리民族 우리國家가 義로운 民族 義로운 國家로 다시 再建하는 聖業을 이룩하는 聖스러운 時期에 開宴된다는 것은 實로 그 意義가 重大한 것입니다. 過去에 겪은 쓰라린 苦痛과 受難을 通하여 우리들은 깊은 民族的인 反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요 祖國檀君이 우리에게 끼쳐주신 遺訓을 받들어 지난날의 썩은 精神과 썩은 生活썩은 氣風은 없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 全國 彷彷谷谷에서 祭軍이 參席하게 되고 作品이 來到하여 -大文化運動이 이루어 진 뒤에는 汎市民의 熱熱한 支持와 協助 努力과 心血의 結實이었음을 想起할 때 眞心으로 感謝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 運動이 뻗어가서 全國民 情緖觀念이 淳化되고 鐵石같이 團結해서 殘忍無道한 共產主義는 打倒되고 盜賊떼의 無知한 발길에 짓밟히고 있는 北韓을 하루 빨리 찾아서 잘 살수 있는 나라 福된 民族이 되는데 기틀이 되기를 비나이다. |
제13회 (1962년 11월 15-19일) |
우리의 삶은 永遠을 이瞬間에 두고 오늘의 世日과 함께 살기를 努力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때가 이러하니 藝術은 말 할 수가 없다는 그러한 핑계를 한다면 그것은 未能力者의 現實을 逃避할려는 傍觀的인 態度인 것이라 하겠다. 모든 藝術人들은 이날의 現實에 率先 參與하여 各自의 그 領域에서 人類의 利益이 되는 主權과 自由때문에 寄與할 수 있는 藝術이 創作되어야 할 것이니 藝術이 어느 階級의 自慰的인 享樂品이 된다거나 少數의 作家들의 權威를 失墜하는 것이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그社會的인 狀態는 또한 藝術을 허망케 하는 結果를 나타내는 것이다. 5.16의 革命이 그 公約한 바의 하나로서 頹廢한 國民道義와 民族正氣를 다시 振作시킨다고 했다. 그러자면 새로운 人間像의 美化할 作業이 構想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藝術의 世界에서 다시 生命이 門戸를 널리 開放하여 새로운 生活을 위해 아름다운 藝術을 創作할 수 있겠금 하고 그것을 享樂할 수 있는 社會的인 機會가 國民全體에 均等되겠금 우리들 藝術人의 精誠으로 開天節의 이날을 맞이하여 民族藝術의 暢達을 위해 祝賀하는 祭典을 여기에 베푸는 바인저. |
제14회 (1963년 11월 14-18일) |
우리의 삶은 永遠을 이 瞬間에 두고 오늘의 世日과 함께 살기를 努力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때가 이러하니 藝術을 말할수가 없다는 그러한 핑계를 한다면 그것은 未能力者의 現實을 逃避할려는 傍觀的인 態度인 것이라 하겠다. 모든 藝術人들은 이날의 現實에 率先 參與하여 各自의 그 領域에서 人類의 利益이 되는 主權과 自由때문에 寄與할 수 있는 藝術이 創作되어야 할 것이니 藝術이 어느 階級의 自慰的 亨樂品이 된다거나 小數의 作家들의 職業的인 生活의 方便이 되어서는 藝術의 權威를 失墜하는 것이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그 社會的인 狀態는 또한 藝術을 허망케 하는 結果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날의 國民 道義와 民族 正氣를 한층 고답적으로 발양하기 위하여 새로운 人間像의 美化할 作業이 構想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藝術의 世界에서 다시 生命의 門戶를 널리 開放하여 새로운 生活을 위해 아름다운 藝術을 創作할 수 있겠금하고 그것을 享樂할 수 있는 社會的인 機會가 國民全體에 均等되게 우리들 藝術人의 精誠으로 開天節의 이날을 맞이하여 民族藝術의 暢達을 위해 祝賀하는 祭典을 여기에 볘푸는 바인저. |
제15회 (1964년 11월 16-20일) |
8·15 光復 以後의 19년을 맞은 우리들에게 한국의 最初로 創始한 開天藝術祭도 올해로 第15回의 祭典을 여기에 베풀게 된다. 도리켜 보건대 이 祭典의 意가 民族精神의 昂揚과 藝術의 大衆化를 위하여 많은 文化人들이 個人的인 利害를 떠나 眞實로 情으로 엉키고 理念으로 묶여져 藝術의 自由와 祖國의 統一을 念願하면서 이 混亂한 世紀를 그동안 14回나 全國的이고 舉族的인 行事로서 거듭해 온 것이니 이제야 벅찬 감회마저 가지는 이 시간이다. 藝術은 永遠한 것이고 그것은 人間精神의 眞實한 꽃이라고 해왔다. 그러면 民族藝術은 그 國民이 새로운 來日의 生活을 위해 寄與하는 바 있어야 하며 藝術行事는 이 날의 大衆의 苦痛과 喜悅을 같이 할 수 있는 社會的 狀況意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趣旨의 일단으로 해서 第 15回의 藝術祭를 열기로 한다. |
제16회 (1965년 11월 11-15일) |
開天藝術祭가 韓國藝術祭의 효시로서 베풀어온지 連綿 16回를 거듭하게 된 것은 진정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藝術은 美的感情의 發現으로서 個性과 獨創性을 지닌 時代精神과 國民性의 表現이라 할진대 이 祭典의 意義가 現實的으로 焦急을 要하는 民族正氣의 昂揚과 人間精神의 純化에 있다할 것이며 또 하나는 이 고장 自然의 攝理에서 作用하는 남가람이 千秋에 푸른 氣魄과 丹心의 流露에서 이룩된 것이다. 이에 많은 藝術人들은 藝術의 自由와 祖國統一과 民族文化暢達을 渴求하는 마음에서 이 混亂한 世紀를 그동안 16回나 全國的이고 舉族的인 行爲로서 거듭해온 것이니 진실로 벅찬 感懷와 알찬 보람을 가지게하는 이 時間이다. 여기 現社會的 狀況속에서 겨레의 새로운 내일의 生活을 위하여 寄與코저하는 것이며 大衆과 더불어 苦樂과 喜悅을 같이할 수 있는 참된 人間의 精神의 꽃을 피우게 할 것을 祝願하여 삼가 이 聖典을 다시금 史都晋州의 開天祭壇에 받들고저 하는 바이다. |
제17회 (1966년 11월 10-14일) |
藝術은 眞善美의 完壁表現으로 그 頂上을 삼는다. 한마디로 娛樂이라고 얕잡아 疎外하는 人士가 있다고 하면 그는 되려 낡은 世代의 찌꺼기로 待接받기에 알맞다 할 것이다. 예술은 건전한 생활인에 “메카니즘”에 시달리는 複雜한 오늘을 사는 人間의 精神에 活力素를 불어넣는 滋養劑로서 高度한 知性과 哲學을 要求하는 靈感的 所產物이다. 예술이 燦然히 開花하는 社會에는 物質文明一邊倒에 의한 人類終焉의 危機가 救援될 수 있는 것이지만은 가령 예술이 없다거나 어느 權力의 隸屬으로 轉落하는 境遇를 생각하여 보면 사람이 畜生의 그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정말 毛骨이 竦然하여 짐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藝術人도 家庭과 國家社會의 忠實한 成員이어야 하며 寄與하는 예술靈魂에 充足되는 次元의 境地를 우리는 希求한다. 한갖 올림피아 마을의 競技 마라톤이 오늘의 世界를 아울은 大올림픽祭典으로 發展하였듯이 韓半島南端에 치우쳐있는 조그마한 고장 晋州가 발돋움하며 올리는 횃불의 바람이 國內 全域에 번져 한창 꽃다운 季節에 다시 열일곱돌의 잔치를 차리고져 하는 것은 永遠에서는 한 瞬間에 지나지 않지만은 千年을 오히려 짧다고 말없이 鎭座하는 촉석루의 이끼처럼 悠悠히 흘러 다함 없을 푸른 남가람을 닮고 싶은 意慾에서다. |
제18회 (1967년 11월 6-10일) |
우리는 올해로서 肇國 4300년의 開天節 이날을 맞이한다. 길고 먼 이 時間을 살아오는 동안에 겨레의 榮興과 受難이 몇번이나 거듭했고 國運의 浮沈과 社稷의 盛衰가 또한 世界史의 普遍한 連鎖의 -還으로서 過程했던 것이다. 무릇 歷史意識은 傳統의 繼承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次元의 探索에서일때 그것 은 創造意識이다. 創造的 行爲는 藝術의 領域에 屬한다. 우리나라의 文化가 全般的으로 近代의 黎明을 맞는 年代가 20世紀의 初頭이 었었고 그 新黨의 機運을 맞이한 藝術中에서 新文學[新小說] 이 今年으로 回甲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獨立을 紀念해서 開天藝術祭가 今年으로 18回를 거듭 開催한다. 初回 開催趣旨에서 밝힌 바의 藝術이란 사람의 목숨과 같이 永遠히 자유롭고 大衆的인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 藝術祭의 行事는 自由롭고 創意的인 良心의 소리요 꿈과 美의 司祭로서 大衆과 함께 共鳴共感할 수 있는 狀況을 이룩한 것으로 此回의 祭典을 열어 베푼다. |
제19회 (1968년 11월 12-16일) |
藝術은 사람에서 떠날 수 없는 慾望이요 衝動이며 久遠의 理想인 同時에 本能的 慾求에 依한 自然發生的인 產物이다. 비록 그 形式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나 그것은 表現에의 方法問題이지 眞ㆍ善ㆍ美의 究竟를 追求하는 그 精神에 있어서는 每樣 같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文化는 文明과 藝術을 通稱하는 것이다. 文明은 科學을 藝術은 精神 乃至 形而上學의 分野로 大別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두 가지는 人類의 生活을 보다 理想的으로 進展시켜 나아가는데 누구도 否認을 許容치 않는 不欠의 要件이 될 것이다. 여기에 19回째 맞는 開天藝術祭가 許多한 難關과 隘路를 克服하고 또 迂餘曲折을 겪으면서도 해를 거듭할 때마다 적어도 좀더 탐스러운 꽃 좀더 알찬 結球를 希求하여 마지 않는 것은 事實이다. 이는 곧 우리의 念願이며 그리고 기대가 그만치 增大되어 가고 있나는 좋은 證座이라 할 것이다. 近者에 體典이 자못 旺盛한데 비하여 國內의 群少藝術祭가 漸次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은 健全한 肉體에 그 支柱인 精神을 가꾸는 뜻에서 못내 아쉬운 일이라 今年들어 南部國土의 보기 드문 旱災 水災를 무릅쓰고 다시 祭典을 차림하는 일은 오로지 이에 緣由한다 할 것이다. |
제20회 (1969년 11월 12-16일) |
예술은 사람에게서 떠날 수 없는 慾望이요 感情이며 久遠의 理想인 同時에 本能的인 深層의 慾求를 淨化시키는 過程이다. 그래서 그 形式은 여러가지로 나누어지나 그것은 表現에의 方法 問題이지 眞ㆍ善ㆍ美의 究竟을 追求하는 精神에 있어서는 每樣 같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文化는 存在의 意義를 깊이로 파고 들면서 表現되는 文明과 藝術을 包括한 通稱이다. 그러므로 文明은 科學을 藝術은 知·情·意의 精神 乃至 形而上學인 人類의 生活을 보다 理想的으로 進展시켜 나아가는데 至上의 要件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開天藝術祭가 創始된지 올해로 第 20回의 成年을 맞이한다. 當初에 獨立記念 嶺南藝術祭라 이름했던 만큼 그동안 激動하는 歷史的 狀況속에서 그 많은 難關과 隘路를 克服하고 迂餘曲折을 겪으면서 해를 거듭할때마다 보다 탐스러운 꽃과 보다 알찬 열매를 希求하여 마지 않는 것은 事實이나 이는 곧 우리 全體 藝術人의 念願이고 기대가 그만치 增大되어 가고 있다는 證左이라 할 것이다. 개천예술제가 이곳 晋陽城頭에서 創始된 후로 全國 곳곳에서 크고 작은 예술문화제가 뒤이어 개최되고 있으나 近年에 와서 廢祭된 곳도 많다. 偉大한 藝術이 靈魂의 自覺과 信念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이 國家的이고 民衆的인 開天藝術祭典도 우리 藝術人의 信念과 긍지로서 永世 回數를 거듭해 갈 것을 20回 祭典을 베푸는 이날에 다짐한다. |
제21회 (1970년 11월 12-16일) |
우리는 藝術이란 命題위에 놓여 있는 숨가쁜 空間을 두고 그래도 늘 자기 暢達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山河가 무너지고 熱風이 휘몰아치는 季節속에서도 예술인은 創作의 能力으로 오늘의 生活을 淨化시키고 내일의 세계를 理想하는 彼岸으로 새로운 方向을 提示한다. 예술의 意義와 本質이 創造하는 自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처하고 있는 이 現實의 歷史的 狀況은 겨레의 主體意識의 確立과 人間精神의 淳化에 있다 할 것이다. 이날에 世界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따라서 人間關係는 密接해진다. 藝術이 全人類의 生存의 可能性을 試圖할 경우 이는 당연히 民衆과의 共同한 對話의 廣場이 되어야 함은 오늘날 藝術人의 使命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제 여기 스물한번째의 개천예술제를 개최한다. |
제22회 (1971년 11월 12-16일) |
예술은 사람에게서 떠날 수 없는 慾望이요 衝動이며 久遠의 理想인 동시에 本能的慾求에 의한 自然 發生的인 產物이다. 비록 그 형식은 여러가지로 나누어지나 그것은 表現에의 方法問題이지 眞·善·美를 찾고자 하는 그 정신에 있어서는 다를바 없는 것이다. 예술이 燦然히 開花하는 社會에는 文質文明一邊到에 의한 人類의 마지막의 위기가 救援될 수 있는 것이지만 가령 예술이 없다거나 어느 權力의 隸屬으로 轉落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毛骨이 悚然하여 짐을 禁치 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文化는 藝術을 통칭하는 것이다. 文明은 科學을 藝術은 精神 내지 形而上學의 分野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이 두가지는 人類의 生活을 보다 理想的으로 進展시켜 나아가는데 누구도 否認을 許容치 않는 不欠의 要件이 될 것이다. 여기 豐饒한 상달의 하늘 아래에서 스물두번째 맞는 개천예술제가 허다한 난관과 隘路를 극복하고 해를 거듭할 때 마다 적어도 좀더 탐스러운 꽃 좀더 알찬 結球를 바라면서 千年을 짧다고 말없이 鎭座하는 촉석루의 이끼처럼 悠悠히 흘러 다함 없을 푸른 남가람을 닮고 싶은 意慾에서 베푸는 바인저. |
제23회 (1972년 11월 9-13일) |
예술을 말할 때 現實을 土壤으로 치면 예술은 그 위에 生長하는 樹木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때에 개천예술제는 우리 진주라는 土壤위에 23年間 자란 樹木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 지방의 自然, 氣候, 環境에서 四半世紀에 걸쳐 生長한 이 樹木은 과연 얼마나 民族에 人類에 貢獻할 用材로서 자랐는가 다시금 간추려 보다 나은 方向으로 끌어 올려야 할 때도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祝祭의 人波에 밀려 다니던 浮動視線의 見解이오 그 實 예술의 각 장르마다 치루어진 내용은 質·量간에 昔今이 다르다 하겠다. 뿐만 아니고 이 風土(풍토)에서 다듬어진 우리나라 中堅藝術人만 하여도 열손가락으로는 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本是 예술은 目的面이나 成果面으로 따지기에 앞서 本能的 自然發生的 所產임을 깊이 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억울 할 때는 憤怒를, 기쁠때는 喜悅을, 醜한 것에는 아름다움을, 不義에는 義를 깨우치고 絶望에는 꿈을 안겨서 物質과 權力으로는 얻지 못하는 靈魂에의 充足을 천인의 奈洛에 떨어져 오히려 解脫하는 叡智를 가꾸어 眞, 善, 美의 究竟을 追求하는 예술의 底邊人口를 늘리면 그만이다. 이번 祭典이 中部, 嶺東, 嶺南의 水災民에 慰問이 되기를 念願하고 虛僞와 閉鎖로 눈뜬장님이 되었거나 劃-의 앵무새로 만들어 졌거나 美醜조차 가릴 機能마저 앗겨버린 이북 동포들에게 이 自由奔放한 제전의 횃불 환히 비쳐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제24회 (1973년 11월 8-12일) |
우리 晋州에서는 가을이 오면 옛적부터 누려온 文化藝術의 祭典을 열게 됩니다. 이미 그 횟수도 24회를 거듭하게 되었으니 한결 기쁜일이 아닐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간 曲折도 있기는 하였지만 鄕土 晋州市民은 물론 서울을 위시한 全國에서 參加하는 많은 藝術人과 京鄕各地의 藝術學徒 및 文化藝術團體의 同調로 文化公報部慶 尚南道 晋州市를 비롯하여 政府 各 部處와 鄕土에 緣故가 있는 事業家 言論界의 積極的인 支援 아래에 한해도 缺祭함이 없이 藝術의 底邊擴大와 生活化에 寄與한 바 있으며 우리들 民衆의 새로운 來日의 삶의 哀歡을 같이 나눌 수 있는 廣場됨에 微誠을 다하여 왔음을 외람되이 自負하여 마지 않는 바입니다. 本 예술제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허다한 隘路가 많았습니다. 今年에도 祭典이 所期의 盛況을 이룩하겠금 여러분의 惠慮鞭撻있으시기를 삼가 바라면서 開催합니다. |
제25회 (1974년 11월 4-18일) 純粹藝術의 大衆化 |
개천예술제는 민족의 예술제로서 民族文化의 暢達의 廣場이 되고 이제는 전국의 예술가와 藝術家를 志望하는 젊은이가 모이는 祭典이 되었다. 建國의 歡喜를 나누고 민족문화의 基本精神을 밝히고 씨 뿌리면서 開天民族史的 意義를 높여 우리 나라에서 제일 먼저 개최한지 벌써 25주년이라는 成年예술제로 발전하였다. 이 크낙 한 깃발 아래서 大衆속에 퍼진 예술과 문화의 값진 보람은 繼承되고 또 昇華하고 끝내는 예술민족의 哲學을 이 땅에서 定立하리라 確信한다. 어느 예술인도 獨占할 수 없는 개천예술제는 祝祭라는 惰性症에서 脫皮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傳統은 아름답고 귀하다. 그러나 우리는 獨創的이고 大衆的인 새로운 예술제의 價値觀을 追求하는 決意와 努力이 필요하다. 『예술에 의한·대중을 위한·민족의 개천에술제』의 영원한 前進을 期約하면서 〈너〉와 〈나〉가 합친 오직 〈우리〉라는 命題앞에서 온 국민과 국가의 이름으로 예술과 문화의 광장에 서로 모여서 참되고 알자고 기쁘고 즐거운 행사를 이룩해야 하겠다. 天地調和의 자연스러운 理致를 지켜 개천예술제를 개최하지 않을 수 없는 森嚴하고 崇高한 義務感을 藝術都市 건설에 앞장 서는 긍지를 느낀다. 남강물 젖줄로 한 향토 진주는 民族精氣와 民族敎育과 民族文化運動의 요람지이다. 이 思想의 바탕 위에 예술의 횃불을 밝히고 꽃 피우고 그 열매를『나라와 계례에 나누고 펴는 거룩한 뜻을 이어 빛낼 것을 다짐한다. 그러기에 여기 〈純粹藝術의 大衆化〉라는 主題를 設定하여 그 目的達成에 全心全力을 다 하여야 하고 예술제에 參加하는 모든 사람도 이에 발맞추어서 행동하고 노력하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
제26회 (1975년 11월 5-9일) 純粹藝術의 大衆化 |
嶺南文物의 젖줄인 南江이 悠久하듯 偉大한 民衆藝術을 昇華시킨 開天藝術祭는 眞ㆍ善ㆍ美의 메아리며 꽃으로서 永遠히 빛나며 前進하고 있다. 祖國이 獨立된 一週年에 비롯한 開天藝術祭는 名實共히 民族藝術의 開花場으로서 先導的 使命과 함께 26回를 거듭하는 동안 이 땅위에 예술 문화의 祭典을 滿潑시켰고 이렇게 宣揚된 예술 風土속에서 오늘은『民族藝術의 定立」이라는課題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光復 30년의 文化史的 意義속에 機械文明으로 소외되고 상실되는 人間性의 深層에다 샘물처럼 솟는 창조와 開拓의 意志를 담고 智慧로운 생활과 함께 문화예술의 振興에 이바지하려는 뜻은 오로지 民衆의 藝術哲學을 具現시키려는 責務에서다. 이러기 위해서는 主催者는 市民이요 民衆이 되고 參與하는 모든 사람은 共同社會에 있어서 예술의 機能은 무엇이며 우리 모두에게 예술은 어떠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主體的 姿勢를 가져야겠다. 또한 직접 예술분야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예술이 의식적으로 삶에 즐거움을 주는 목적으로 하는 창작과 행동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을 다시 한 번 음미할 때라고 믿는다. 여기에 비로소 〈순수예술의 대중화〉로 〈민족예술을 정립〉한다는 主題가 개천예술제의 궁극적인 염원이요 〈비젼〉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민중의 美的(미적) 의식과 미적 감정을 전달하고 이입하면서 민중의 크나한 생명을 讚美하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무엇이 나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무엇이 나쁜가? 민중을 위한 예술 무엇이 나쁜가? 그것이 예술인 바엔 무엇이 나쁜가? 바로 이 信條를 조국과 민족에게 바치며 개천예술제를 기리는 참된 뜻으로 우리 서로 반기며 힘 모아 성전이 되게 하자. |
제27회 (1976년 10월 22-26일) |
오늘날 機械文明이 人間의 生活을 便利하게는 해 주었으나 人間의 淳朴性은 날로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傳統的인 모든 가치 基準과 文化形態를 엄청나게 바꾸어 놓고 말았다. 最近에 이르러 主體性을 다시 찾아야 되겠다는 민족적인 인식의 출발과 함께 민족 문화의 暢達이 새 물결로 넘쳐흐르고 있는 것은 傳統文化에 대한 存在 理由가 한동안 희박해 있었다는 實證이라 하겠다. 홍수처럼 밀려온 外來文明에 대한 우리 것의 되찾음과 한편으로는 물질文明의 外形的成長에 위축된 內面世界의 再發見 즉 美의 질서를 꾀하는 예술적 문화에의 자각이라 함이 옳겠다. 해마다 晋州에서 열리는 개천예술제는 우리 것에 대한 보다 알찬 追求가 지방 예술을 通해서 보다 구상화 되고 심화 되어져야 하며 지방예술의 육성을 통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와 추구가 본격화 돼야 한다는 당연 과제를 풀어 나가는 現場으로서 그 의의를 지녀 왔다. 또한 이 개천예술제와 함께 열리는 제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이 지방 固有의 행사는 아니지만 이 역시 시대와 환경에 따라 生成되고 消滅되면서 脈絡을 이어온 우리 것의 再現이며 傳承해야 할 민족 문화의 遺產으로서 그 價値 保存의 現場이라는 意義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예술 행사가 진주에서 열리게 된 것은 行政的 節次上의 便宜에 의해 묶어진 것이 아니며 그 性格이 有似하다는 데 연유하는 것만도 아니다. 진주는 壬辰 癸巳年 倭賊의 浸擄를 물리치기 위해 온 市民이 玉碎한 民族魂의 鎭怨地인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문화 창조의 先見地로서 역사와 傳統이 뚜렷한 고장이다. 이 고장의 어느 모퉁이에서도 노래와 춤과 전설을 찾을 수 있고 서릿발 같이 매서운 護國의 넋을 더듬을 수 있다. 내 것의 지킴과 보존은 곧 호국정신과 一致 하거니와 이를 전통문화로서 固着시키지 않고 기름지게 가꾸는 市民意議는 그 밑바닥이 언제나 창조적이다. 우리는 이 제전의 主題를 『순수 예술의 대중화』 『민속 예술의 대중화』로 내 걸고 지난날의 문화적 유산과 오늘과를 연결 시키는데 구심점을 찾고 좌표를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에의 참여 영역이 일부층에 국한 되지 않도록 확대해 나가고 심화시키는데 주력하는 책무를 걸머지고 있는 것이다. 민족 예술을 정립시키는 과제는 한두 가지 행사로서 매듭 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제전을 통하여 끊임없이 추구하고 모색해서 먼 서라벌의 찬란한 정수가 오늘의 이 땅에 이어져 더욱 빛나도록 하는 使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대중 문화의 洪水 속에서 참다운 문화를 살려 내는 使命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383년전 왜적의 침노를 죽음으로 막아 싸운 호국 충정의 의지와 염원으로 민족 예술의 축둥을 밝히며 시민의 정성을 모아 삼가 이 祭典을 이어 여는 것이다. |
제28회 (1977년 11월 10-14일) |
예술은 人間精神의 참된 밑받침이 있고서야 玲瓏히 피어날 수 있는 꽃이다. 그러므로 인간정신이 살아 있고 뻗어가며 그것은 지킬 수 있는 現場에서만 예술의 꽃은 탐스럽고 온전히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뚜렷한 의미를 갖고 있는 진주에서 이제 스물 여덟번째의 횃불을 켜 들고 이 제전을 펼치게 된다. 그동안 〈순수예술의 대중화〉 〈민족예술의 대중화〉라는 主題를 내걸고 예술이 대중의 參與와 共感의 텃밭에 뿌리 내리는데 熱과 誠을 다해 왔다. 이제는 대중의 참여와 공감의 바탕에서 참다운 個性과 國籍을 지닌 民族藝術의 定立을 기해야 할 때다. 〈민족예술의 정립〉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예술·진정한 예술로, 우리의 정신을 올바른 것으로 昇華시키는 좌표요 지름길이 됨은 再言을 要치 않는다. 여기에는 첫째, 전통예술의 發掘 傳承이라는 一次的 命題가 주어져야 한다. 전통예술이 전승이라는 素朴한 自虐感에 머물 수도 있지만 縱的으로는 民族史의 喚起라는 主體的 認識을 피하고 橫的으로는 民族的 一體感의 발양에 이바지 하도록 유도하는 차원에서 理解되어야 한다. 둘째, 예술의 地方主義를 표방 하고자 한다. 예술은 예술이 창조되는 地域과 그 主體를 떠나 成立될 수 없는 바 그 지역적 背景과 主體의 獨特한 理解와 方式을 포함하는 예술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個人의 創造的 作業에서 나아가 -脈의 運動으로 展開되기를 희망한다. 國籍(국적)있는 예술이란 國籍(국적)을 이루는 地方的(지방적) 特性(특성)의 普遍化(보편화)와 깊이 關聯(관련)되기 때문이다. 셋째, 앞의 두가지 前提(전제)와 아울러 이룩해야 할 예술의 創意性(창의성)을 強調(강조)하고자 한다. 우리것 혹은 民族(민족)의 것은 그것대로의 創意(창의)와 個性(개성)의 地盤(지반)위에서만 成立(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족예술의 정립〉을 앞에 내세운 구체적 목표를 이룩해 감으로서 完成(완성)될 것이므로 간단없는 채찍과 呼應(호응)을 얻어 人間精神(인간정신)의 表現(표현)과 對話(대화)의 場(장)을 하나의 祝灯(축정)으로 밝히고자 한다. |
제29회 (1978년 11월 9-13일) |
建國(건국) 30周年(주년)을 기리는 第(제)29회 開天藝術祭(개천예술제)는 第(제)28回(회)에 이어 民族藝術(민족예술)의 定立(정립)이라는 主題(주제)를 다시 내어 건다. 이는 大衆(대중)의 參與(참여)와 共感(공감)의 바탕에서 참다운 個性(개성)과 國籍(국적)을 지닌 民族藝術(민족예술)의定立(정립)을 期(기)하고 알찬 民族(민족)의 精神文化(정신문화)를 舉揚(거양)해야 할 때에 와 있기 때문이다. 民族藝術(민족예술)의 定立(정립)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藝術(예술) 진정한 예술로 우리의 정신을 올바른 것으로 昇華(승화)시키는 座標(좌표)요 지름길이 됨은 再言(재언)을 要(요)치 않는다. 여기에는 첫째, 傳統藝術(전통예술)의 發掘(발굴) 傳承(전승)이라는 一次的(일차적) 命題(명제)가 주어져야 한다. 傳統藝(전통예)이 傳承(전승)이라는 素朴(소박)한 自虐感(자학감)에 머물수도 있지만 從的(종적)으로는 民族史(민족사)의 喚起(환기)라는 主體的(주체적) 認識(인식)을 꾀하고 橫的(횡적)으로는 民族的(민족적) 一體感(일체감)의 潑揚(발양)에 이바지 하도록 誘導(유도)하는 次元(차원)에서 理解(리해) 되어야 한다. 둘째, 예술의 地方主義(지방주의)를 標榜(표방)하고자 한다. 예술은 예술이 創造(창조)되는 地域(지역)과 그 主體(주체)를 떠나 成立(성립)될 수 없는 바 그 地域的(지역적) 方式(방식)을 포함하는 예술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個人(개인)의 創造的(창조적) 作業(작업)에서 나아가 一脈(일맥)의 運動(운동)으로 展開(전개)되기를 희망한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전제와 아울러 이룩해야 할 예술의 創意性(창의성)을 強調(강조)하고자 한다. 우리것 혹은 民族(민족)의 것은 그것대로의 創意(창의)와 個性(개성)의 地盤(지반) 위에서만 成立(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民族藝術(민족예술)의 定立(정립)은 앞에 내세운 具體的(구체적) 目標(목표)를 이룩해 감으로써 完成(완성)될 것이므로 간단 없는 채찍과 호응을 얻어 인간 정신의 표현과 대화의 장을 祝灯(축정)으로 밝히고자 한다. |
제30회 (1980년 11월 6-10일) |
제30회 개천예술제는 한 世代(세대)를 정리하는 歷史(역사)적인 祭典(제전)이 된다. 開天(개천)의 祭壇(제단)에 예술로 분향 해 온지 30個(개) 星霜(성상) 이제는 觀覽(관람)하는 터전에서 參與(참여)하는 현장으로 踏襲(답습)하는 터전에서 창조하는 현장으로 예술적 祭壇(제단)의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 한 세대는 어김없이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다음 세대를 열어 드러내지만 창조적 정열은 끊임없이 자기의 모습을 가꾸어 가는 법이다. 이에 지금까지 표방해온 예술의 지방주의를 그대로 이어 이 지역의 배경과 삶의 磁場(자장)을 살려내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또한 예술적 피를 하나로 돌려 인간적 交感(교감)의 현장으로 발돋움 하여 和解(화해)의 共同體(공동체)를 이룩 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예술의 눈으로 이웃을 보고 예술의 마음으로 이웃과 어울리는 理想(리상)을 史都(사도) 晋州(진주)에 이룩할 것이며 벌려 놓는 제전에서 보여주는 제전으로 進行(진행)해大衆(대중)의 공감대를 넓혀갈 것임을 참여 예술인과 시민의 뜻으로 밝혀 올린다. |
제31회 (1981년 10월 30-11월 2일) |
第31回(제31회) 開天藝術祭(개천예술제)는 한世代(세대)를 整理(정리)한 바탕 위에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 세우고 가꾸어 나가는 출발의 意味(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른차례의 祭典(제전)을 치르는 동안 우리의 時代的(시대적) 狀況(상황)과 역사의 흐름이 큰 변화를 겪으면서 精神文化(정신문화)에 대한 價値觀(가치관) 또한 크게 달라졌다. 우리가 당장 일으켜 세워야 할 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개천예술제에 대한 視角(시각)도 좀더 구체적이고 신질적인대로 돌려지고 있는 현실을 창조적 意志(의지)로 받아들여 지난해까지 표방해 왔던 예술의 地方主義(지방주의)를 심화시켜 대중의 에너지를 集散(집산)시키는데 이바지 하고자 한다. 한 세대의 흐름을 통해 알차게 영근 部門(부문)은 더욱 알차게 하고 엉성했던 부문은 가려내어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데 정성을 기울이고자 한다. 또한 우리나라 문화예술제전 의 효시임을 자랑하는 이 제전이 새 年代(년대)의 출발 내지 새 時代(시대)에로의 출발이라는 命題(명제)를 충분히 수용하면서 당초 소망했던 영원히 자유롭고 대중적인 예술의 참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는데 큰 구실을 해야 할 것으로 믿으며 우리 것에 대한 긍지를 살려내는데 구체적인 작업을 펴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을 통해 참된 自我(자아)를 발견하고 예술을 통해 이웃과 화합하며 예술을 통해 인류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찾기 위해 모든 부문에서의 進行(진행)이 創意的(창의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모든 참여 예술인과 시민의 뜻을 모을 것임을 밝혀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