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 70년사 꽃을 피우다/서제
영남예술제 명명기 서제(개천예술제)
윤동주비트겐나스글나라
2021. 10. 3. 23:29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서제문을 본 저서의 부록으로 실은 이유는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없는 후행연구자들에게 연구의 다양한 관점을 통한 연구 확대를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현대축제의 효시 개천예술제- 재맥락화로 축제이론을 세우다-, 저자: 안영숙
부록
부록 2. 영남예술제 명명기 취지문(1949-1957년)
제1회 (1949년 11월 22-26일) |
하늘과 땅이 있는 곳에 꽃이 피는 것과 같이 人類의 歷史가 있는 곳에 文化의 꽃이 피는 것은 아름다운 宇宙의 攝理가 아닐 수 없다. 藝術은 文化의 또 한 겹 그윽한 꽃이요 藝術이 없는 世紀에 香氣와 참다운 人間精神의 結實이 없는 것이다. 한때 藝術이란 權力者를 위하여 宮廷속의 秘苑에 피는 꽃인 줄만 알았으나 穩全한 藝術이란 사람의 목숨과 같이 永遠히 自由롭고 大衆的인 것이다. 기름지고 오오랜 땅위에 커다란 꽃송이가 피어 나듯이 힘차고 참다운 마음 위에서만 偉大한 藝術은 꽃피는 것이다. 暴虐의 모진겨울에서 解放된 우리 겨레의 목숨위에 그 깊숙한 서라벌의 藝術的 피는 바야흐로 꿈틀거리며 새로운 百花爛漫을 設計하고 있다. 여기 獨立된 1周年을 길이 아로 새기고 嚴然하게 되살아난 겨레의 아우성과 마음의 노래와 그 꽃의 一代聖典을 史都 晋州에 이룩하여 젊은 全 嶺南의 精誠으로 開天의 祭壇앞에 삼가히 받들기를 뜻하는 바이다. |
제2회 (1951년 11월 1-5일) |
오늘도 疆土의 허릿띠 위에서 사나운 싸움은 싸워 지고 있다. 오직 하나 自由의 이름 아래 全世界의 젊은 同志들이 우리 祖國 땅에로 멀리 찾아와서 목숨을 내걸고 싸워 준다. 이곳 晋州의 변두리에선 智異山에 뿌리를 박은 共産主義 殘兵들이 어지러운 밤낮의 出沒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그들의 노략으로 말미암아 흘려진 防衛戰土와 良民의 피! 그리하여 食糧의 짐 被服짐 彈藥짐을 등지고 억울히 끌려 들어간 百姓의 數爻를 헤아릴 수 없다. 갖은 殘忍한 手段으로 許多한 愛國者들은 虐殺되었었다. 그리하여 그동안 네 번이나 가까이 侵攻의 企圖를 받았던 晋州의 거리는 六ㆍ二五의 戰禍 그대로 아직은 싸늘한 廢墟이다. 우리가 아는 바는 戰土는 발 벗고 옷 헤어지고 굶주려 싸우며 누누한 匪侵 괴재地帶의 人民들이 血族과 家產을 빼앗기고 가마귀떼 처럼 울고 있다. 촉석루는 빈터가 되고 晋州劇場은 송두리째 日月星辰을 시멘트 바닥에 앉아 바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第2回의 嶺南藝術祭는 버려지려고 한다. 몹시 외람한 노릇일지 모른다. 망서리지 아니한바 아니었다. 그러나 愛國하는 모든 同志團體를 비롯한 市民들의 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하라! 이럴수록 萬難을 克服하고, 하고야 말라는 것이다. 廢墟의 藝術祭! 이것은 우리 겨레의 象徵일 것이다. 首都의 藝術祭와 달라서 허무러진 晋陽城에서 터지는 合唱이야말로 世界人에게 깊은 感激의 衝動을 줄 수 있으리라 스스로 싸우는 젊은이와 싸우는 嶺南사람의 마음의 簡率이 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배달겨레의 精潔한 原魂을 歷史의 어둠속에 밝혀주는 煌煌한 횃불! 惰眠을 일깨우는 黎明의 높은 북소리가 되고자 한다. |
제3회 (1952년 11월 19-24일) |
벌써 세 번째 嶺南藝術祭를 갖게 된다. 昨年 두 번째만 하드래도 記事와 카메라 畫面으로 적으나마 世界의 脚光을 받았다. 그리하여 싸우는 倍達겨레 才術밭의 倍達겨레가 어떻게 그들의 純潔과 生命을 노래하고 춤추는가를 널리 內外에 알릴수가 있었다. 그것은 물론 10程度의 USIS映畵로서 꾸며진 것으로 그作品이 무게 있지는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風量이 있을 것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 祭典에 대한 祀祭者들의 責任이 무거워진다. 藝術이란 반드시 앞으로 새로이 반드시 빛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뒤로 낡은 것은 흐린 빛으로 設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嶺南藝術祭는 外國사람들의 協力과 그들의 注目을 받는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하늘이 말라 풀과 나무와 사람의 마음까지가 몹시 마른 해다. 거기에다 가로늦게 줄기찬 장마비가 쏟아져 와서 벌판과 고을을 휩쓸어 놓았다. 一身에 水火相侵이라더니 果是 우리겨레가 水火相侵의 몸으로 텅 비인 이 가을을 맞이하는 것이다. 晋州란 아직도 일어서지 못한 양 쓰러져 울고있는 짓밟힌 處女다. 여기에는 水火相 侵은 한가지로 닥아왔었다. 그러나 嶺南藝術祭는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舊歷開天節이 된다면 嶺南藝術祭를 해야 한다는 깃이 이곳 同志들의 아름다운 信仰이다. 深大한 準備力이 드는 그 곳에 이 祀祭者들의 修行的 困難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을 잘 알고도 하는 소리다. 올해는 壬辰六甲이 돌아온 해! 壬辰年과 晋陽城! 이것은 護國의 歷史위에 오래토록 빛나있을 不忘의 傳說이다. 그래서 國防部의 도움도 받기로 하였다. 晋州사람이 살아있는 限이 藝術祭典을 갖겠다는 것에는 그 옛날 壬辰魂과 連脈되는 一聯의 熾烈한 文化的 伺釁을 自覺하는 것이다. |
제4회 (1953년 11월 9-14일) |
이 祭祀가 晋州고을만으로써 차림 되는 것이 아닙니다. 北으로 서울 大邱를 비롯하여 南으로 濟州島에서까지 이 祭祀에 參加하고 있습니다. 道內에서도 釜山, 東萊, 馬山, 統營, 固城, 南海, 咸陽, 居昌, 山清, 河東, 泗川, 咸安, 宜寧, 晋陽 等 坊坊曲曲이 모여 와서 이룩하는 祭祀입니다. 藝術을 들고 祭祀에 參加하는 사람이 近 貳千名이나 되고 晋州를 비롯한 京鄕各地에서도 와주신 設祭의 財力이 百萬圜에 이릅니다. 한 푼의 돈을 벌기 위하여 停車場마다 벌떼처럼 몰려와서 商品을 勸하는 귀저린 哀歌! 또는 한 컬레의 신을 닦아 주기 위하여 거리마다 헤매이는 孤兒의 모습! 또는 한 자루의 鉛筆을 갈아 달라는 傷痍한 軍人들과 그 밖에 數多한 戰災細窮의 百姓들이 찌거러지고 잿밭된 疆土에서 -大悲愴의 심포니를 이룩한 오늘에 또 이 일을 자립하여 悚懼스럽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의出沒者가 舞臺에 서기까지의 背景에 있었던 모든 勞苦와 힘을 생각할 때 다만 고개가 수그려질 수 밖에 아무 말이 없습니다. 創祭의 뜻과 같이 이 祭祀는 舊歷 開天節을 날 잡아서 지내는 것이므로 四千餘年 오늘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肇國主에게 告하는 民族祭인 것입니다. 同時에 우리들이 解放과 建國과 六ㆍ二五를 通하여 그 무서운 政治的 經濟的 軍事的 混亂속에서 잃어버리고 짓밟히고 찢기우고 말라빠진 人間 하나으로서의 본 마음 본土壤을 收復하려는大衆運動인 것입니다. 우리民族앞에 날이 갈수록 커다란 試鍊이 다가오기에 마음바탕의 汚雜을 씻어 없애려는 純潔運動입니다. 同時에 그 깨끗한 生命의 밑뿌리에서 참되이 솟구치는 一切創造에의 힘을 일깨우려는 召命運動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藝術만이 우리나라의 千年國是가 되어야 하겠다는 啓發運動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해마다 늘어가고 알차가는데 비와 거름과 햇빛을 주신 모든 사람의 恩惠는 물론 올해도 連六日동안 開天의 淸明이 우리 위에 冥助하여 주실 것을 빌어 업드려 절 드립니다. |
제5회 (1954년 10월 29일 - 11월 3일) |
昨年 第4回때 慶北知事 申선생의 이런 提議를 받은 일이 있었다. 嶺南藝術祭면 어찌 晋州혼자서만 하느냐고 明年에는 大邱에도 한번 옮아와서 해보자는 말씀 이었다. 이건 무슨 體育大會처럼 여기 저기로 돌림 祭祀를 지내자는 것이 發起의 精神이 아니라 우리 政府의 지금 형편으로선 藝術政策이란 것이 展開的으로 설 道理가 없으니 嶺南一角에서 올린 祭火가 첫 불씨가 되어서 慶尙左右道는 勿論 湖南 各地와 京畿 各地에서도 한가지 祭火를 올리게 하는 矯矢가 되게하자는 뜻이라고 應答하였다. 올해 들어서 기쁨이 있다. 이제 우리가 政客들의 두다리는 册床소리나 끌려나온 大衆의 萬歳소리로서는 不感症에 걸린 것을 自認하거니와 이다지 매마른 民族의 마음터전을 남의 일처럼 영 버려둘 수 없는 슬픔이 쌓여 있는 마당에 마음의 復興作用으로서의 藝術運動이 全面提起 되어야 할 必要를 나날이 痛感하여 오는데 分明히 自發的인 大衆을 위한 그리하여 純一한 本源에의 回歸運動으로서의 藝術祭가 各地에서 祭火를 높이 올리고 있다는 現象을 보라. 올해들어 仁川이 아직 消息없으나 慶州의 第1回 서라벌藝術祭, 南原의 青年藝術派主催 綜合藝術祭, 南海의 第1回 錦山藝術祭, 濟州道의 五賢高校 [昨今年晋州參加最高賞] 主催 藝術祭, 이밖에 散發的으로 있었던 것들의 數爻란 近來의 이 彩圖이었다. 意慾과 實力의 差異가 設令 間題되었다 할지라도 藝術祭를 어느 商品化하려는 陋劣한 動機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無條件 喝采할 뿐이다. 스스로가 저질은 苦杯는 다음날의 藥杯가 될 것임을 알기에 嶺南藝術祭의 祭神은 開天神! 곧 倍達의 肇國主檀君 어른이다. 그리하여 곧 살아있는 우리다. 이 二格 -元化에 究極의 祭魂이 깃드려 있다. 祭期동안 淸明만이 最高의 恩寵이다. 나머진 모두 人爲로 다한다. 天明인들 짐짓 大衆의 心明이 없이야 어찌 바라랴. 올해도 北 서울, 南 濟州, 西 順天, 東 釜山에서 모여온 祭軍이 疆土全圓이오 해마다 外廊的인 새 行事도 불어 간다. 더구나 論介씨의 한글 碑除幕式이 그것이다. 여기에 仰天伏地하여 神과 사람의 어울진 護祭의 은혜에 祝禱禮拜하며 다시 合掌한다. |
제6회 (1955년 11월 16-21일) |
우리 藝術祭祀의 뜻은 절로 비롯되었고 절로 자라왔다. 開天節의 날을 ト한 것을 생각한다면 肇國者의 주신 뜻이오 가꾸어 주신 同胞의 힘을 생각한다면 民族의 젖줄기를 먹고 자랐다. 祭務에 當하는 兄弟들 너 나 없이 한결같이 貧寒한 그대로이고 자리한 晋州고을이 싸움의 잿밭에서 겨우 허리를 펴려는 몸부림 속에 있으면서 이렇듯 해마다 커다란 祭火를 祖國의 푸른 하늘에 높일 수 있기란 故意의 일로서 이룩될 바 아니다. 여기 여섯 번째 차림하는 祭壇 앞에서 伏地仰天하여 깊이 절 드리고 合掌하는 所以가 있는 것이다. 基督이 마즈막 저녁밥을 먹던 자리에서 十二随從弟子의 하나였던 “유다”는 그 스승을 바라사이의 暴政者에게 팔았거니와 우리의 祭業에 萬一의 슬픈 謀逆의 씨앗이 있달지라도 十字架에 오를 분이 따로 있지 않는 이 不滅한 民族祭火에 스스로 기름이 되어버릴 뿐이리라. 올해들어 비로소 首都를 비롯하여 北으론 江原에서 南으로 濟州까지 南韓 全 市道를 다녀 祭燭을 모아 왔다. 金剛의 줄기에서 나무치는 樵夫의 땀방울과 漢拏의 그림자도 고이잠긴 西歸浦에 전복 따는 海女의 숨가쁜 휘파람소리까지 倍達겨레의 모든精誠이 그 城主와 道伯의 이름을 거쳐서 우리 祭壇에 기름이 되고 빛이 되었다. 이것은 政治아닌 心性에서 얽혀진 民族의 總和國家의 形成으로서 表現될 것이다. 藝術이란 現實의 醜雜, 僞善, 暴力, 詐欺, 背信, 陰謀, 腐敗 等 人間의 무서운 惡質性을 人間性의 根本에서 淨化하고 再生시키려는 人類無窮히 이어나갈 높은 抵抗運動인 것이다. 그러나 이나라의 藝術은 上記 大衆에게 果敢히 作用하고 있지않고 있다. 畿湖各地와 濟州의 섬에 이르기까지 民族의 情緖를 맑게하고 일깨워줄 同類運動이 自然發生하여 저마다 북돋아서 國民運動化하고 나아가서는 純粹心性을 통한 雄渾한 救國運動이 되어야 하겠다. 우리 祭祀는 그와 같이 絶對者에의 祈願임과 同時에 民族相對大衆에의 生命運動으로 展開되려고 한다. |
제7회 (1956년 11월 5-10일) |
나라의 한쪽에 있는 晋州고을 한자리를 꽃피우기와 노래 불리기가 이다지 사람으로선 고단한 일인데 님은 무슨 造化이시기에 天地에 꽃피우고 노래 불리게 함이뇨. 무릇 꽃피우기 위하여 비바람이 있었고 노래하는 아츰을 위하여 추운 밤이 있었던 恩惠를 생각한다면 또는 한분의 뜻이 오래토록 榮光되기 위하여 “유다”의密告와 “골고다”의十字架가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7回 祭典의 聖火앞에 고개 숙이고 感恩의 속눈물 지을 뿐이외다. 行政圖面이나 公文으로써만 일컫는 이름이 아니라 例軍대로 祭主의 발로서 實地의 흙을 디디고 가서 겨레들의 살림을 갈라 맡아 보는 아들께 그곳 兄弟의 뜻으로서 祭燭을 빌어 왔다. 洛東江 끼고 山脈 깊이 들어간 春川의 아츰은 洗水대야에 손꾸락이 시렸다. 나무가지를 머리에도 車에도 꽂은 防衛者들의 부릅뜬 눈방울을 볼 수 있는 곳 暮雨 나리는 淸州의 黃昏을 靑年詩人 Y君과 旅房에 對客한 것은 10月初였다. 大田, 全州를 거쳐 渦旋 五百十年의 한글날을 6回째 南海島 錦上頂의 李成桂 祈壇에서 謝祭 지내고 光州 木浦를 다녀 海路 耽羅의 古州엘 건너갔다. 高夫梁 三始租가 흙에서 솟았다는 구멍과 五百里 濟州海邊을 두르면서 韓國의 靈山! 大漢拏의 秀麗한 威容을 눈에 안고 다녔다. 아득한 바다 건너에 목숨의 바가지들은 떠 있고 모든 거짓된 營爲를 비웃는 듯 海女群의 휫파람은 海風을 뚫고 매섭게 불어 왔다. 實로 江原 樵夫의 도끼찍는 땀과 濟州 海女의 전복따는 숨결마저 사무쳐서 獨立과 開天과 藝術을 위한 우리의 祭火는 밝혀진 것이나 우리가 祭念하는 것은 自由와 歸一과 純潔 그 것이다. 그것 밖의 것이 如何한 理由에서 일지라도 우리 祭典에 容納될바 아니다. 또한 如何한 一方的 無知로 犯해질바 아니다. 마땅히 그와같은 우리 祭念은 國民的 全面으로 運動 普遍化 되어야 한다. 汚濁하여진 겨레의 史河는 지금 그것을 悲願하고 있다. 우리 祭軍들은 그 使命에 服務할 뿐이다. 昨年 들어선 世界性의 것으로 映畵 取材되어 友邦 38個 나라에 알려지게 된 祭運의 發展的 榮光은 過去나 오늘이나 또 無窮히 獨立과 開天과 純潔의 이름 아래 藝術人과 藝術을 守護하려는 民族 共有의 것임을 宣言한다. |
제8회 (1957년 11월 24-29일) |
여덟 번째의 祭壇앞에 서게 된다. 한떨기의 菊花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온누리의 造化로운 恩惠가 있었던 것으로 노래한 詩人이 있거니와 實로 祭壇 앞에 눈 감고 서면 떠오르는 恩惠가 새로워 진다. 祭의 횃불이 오르고 북소리가 멎기까지란 엿새동안의 밤 낮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祭의 차림일과 설거지하는 동안이란 前後 4.5個月에 걸치고 더구나 설거지가 어지러울 때면 그것만을 위해서 마음 祭務가 비롯되기까지의 거의 한해에 걸쳐는 수도 있다. 120機關 團體의 後援의 精誠을 묶으기 위해서 만나야하는 사람은 600을 헤아리고 때로는 한사람도 몇 차례를 만나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고을 고을의 거리 거리와 北 春川 남 濟州까지의 모든 鐵路와 陸路와 海路가 江原高地의 올물든 丹楓빛이 생각나는가 하면 珍島浦口의 호롱불과 鳴梁의 물소리와 南海의 水平線에 저무는 달빛마저 잊히지 않는다. 秀麗한 金剛의 멧줄기에서 壮重한 大漢拏의 모습에 이르기의 헤아릴 수 없는 山과 山이며 겨레의 오랜 젖줄기요 젖가슴인 고운 江과 기름진 벌판들이 車窓 밖으로 홀러간다. 祭軍이란 보이지 않는 位牌와 보이지 않는 祭神에 服務하는 한갖 종(老僕)의 일인지라 일 스스로가 成事됨으로서 그만일 뿐 榮光이란 許諾되지도 念願하지도 말아야 한다. 萬겨레의 마음속 祭壇과 四千年 肇國主의 在天 靈位 앞에 祭運아 榮光되기를 빌고 勞役하므로써 自慰하는 일이다. 木鐸과 誦經없는 托鉢僧으로서 設惑 어떠한 忍辱이 있었달지 라도 말할 바가 없다. 오로지 眞實一路의 方向과 行動이 問題였다. 當然히 旅窓에서 우르러 보는 大韓의 하늘! 이나라에서 자랑할 수 있는건 하늘 밖엔 없겠다고 외람된 斷案에 사로 잡혔다가도 千萬年 묶어온 國土의 한주먹 흙을 다시 생각했고 미움의 소용돌이 속이기에 더욱 貴한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란 宿命을 생각했다. 비록 오늘 내 나라 人間社會를 支配하고 있는 勢力이 “사탄”의 罪業이라 불러질지 모르나 사랑의 源流가 絶滅된 것이 아니고 또한 그것이 不滅한 흐름임을 믿을진댄 빌어온 하나 하나의 祭燭에서 떨어지는 방울은 사랑과 悔恨과 生命의 復活을 祈禱하는 저마다의 뜨거운 눈물일 것이고 俗罪의 嗚咽로서 생각하고 싶다. 우리들이 쌓아온 罪業은 우리들의 懺悔와 服役없이는 永遠히 淨化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念佛로서만 한갓 祈禱의 禮式으로서만 열려지지 않는 頑冥히 굳어버린 靈魂의 門 앞에서 우리를 藝術의 북소리가 開門을 재촉하는 하나의 痛切한 門두다림 소리가 되어진다면 多幸이고 더 무엇을 바랄것이랴. 藝術의 救援에의 使者임을 究竟에서 證明 하실者는 물론 사람들 自身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이 祭業에 바치는 信仰은 모든 無知와 橫暴의 風雲을 뚫고 持續될 것이다. 近年 同志運動을 提起한 濟州 光州 慶州 金泉 大邱 仁川 清州 全州 馬山 密陽 等地의 兄弟들게 敬意를 表하고 마지막으로 六日 祭祀동안의 淸明과 溫和를 빌면서 合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