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학/진주학

의곡사 대흥루와 회광당은 해방 후 회합의 공간이었다

윤동주비트겐나스글나라 2005. 7. 14. 11:22

 

이사한지 몇 년 안 된 우리 집에 오겠다는 의곡사 보살님들 몇 분이 계셔서 집에서 차 한 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살님 중 한 분이 주약동에서 가까운 곳에 꽤 오래 된 맛집이 있다며 가자고 해서 나섰다.

이 더운 날씨에 곰탕이라니....이러면서 망경동 육거리곰탕집으로 향했다.

이집이야 뭐 진주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집이다.

오늘은 뉴스에서도 떠들썩했던 혜성 충돌실험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처음 있는 날이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탐사선 딥 임팩트호는 5.5년 주기로 태양을 공전하는 혜성 '템펠1'을 향해 길이 1m, 무게 370㎏의 충돌체를 발사"해서 시선이 집중된 날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라는 보살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내가 보살 나이마 되도 세상 천지에 도전 못해 볼 것이 없겠다"시며

혜성 충돌실험을 보며 한 마디 하신다.

오늘이 음력 5월 28일이고 월요일이라 한 주의 시작이면도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이다 보니

6월 초하루 법회를 기다리게 된다 하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보살님들은 나이가 가장 어린 나를 이뻐해 주시며 이열치열을 강조하시며

건강은 이리 지키는거라시며 곰탕집에 나를 데리고 가셨고 나는 한쪽 귀퉁이에 앉았다.

그랬더니 나이 가장 많으신 강보살님께서 우리 막내를 한가운데 앉히라 

하시며 극구 사양하는 나를 한 가운데 앉히시며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앉으면서 벽을 쭈욱 둘러 보는 보살님들.

집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인데

"저거 운전샘 작품아이가, 우리 의곡사  대흥루다." 하신다.

"그런데 저기 요 있을 작품이 아인데 와 요개 있는지 모리겄네. 저거 다린 집에 있었는데...."

"거 참....저기 진품이라 카모......내 집에 가가 전화로 물어 봐야겄다"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정보살님 말씀에 고개를 돌렸다. 운전이라 함은 허민을 이르는 말이다. 그림을 알아 본 정보살님도...그곳이 대흥루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 보신 것이 신기해서 나는 "우와 보살님, 우찌 단박에 알아 보십니꺼?" 여쭸더니 내가 1932년 생인데 내가 열 몇 살때 운전샘 그림 기리는 거를 보기도 했고 우리 집에도 오싰고.... 내 알기로 운전샘이 여고 가까이 살았거덩, 여고 동창 중에......언자 세상이 좋아져 가 이런 말도 하는데 그때는 말도 몬했는데 저 사람들이 다 독립운동했던 사람이라. 3.1 동지해 안다아이가..."

"해방되고 정초에 3.1 동지해 만들었거덩"

3.1동지회에 관해서는 의곡사 보살님들이나 처사님들이 가끔 이야기하실 때가 있다. 1946년에 1월 6일 의곡사 대흥루에서 18명이 모여 3.1동지회를 결성했고 보살님이나 처사님들 중에는 의곡사 회광루에서 청남스님과  3.1동지회 분들이  찾아와 이런 저런 논의를 했었다는 것을 보거나 들었다고 기억하는 분들이 간간이 있다. 대동공업사 사장이 억수로 나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돈 벌어서 좋은 일을 했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3.1동지회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처사님께 살짝 물어 본 적도 있다. 셋방과도 같은 곳에 작은 대장간처럼 빌려서 운영하던 사람이......더 큰 공장을....뭐 이러시다가 마지막에 이야기 한 끝에 살짝 흘리시는 것은 보도연맹사건이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의곡사 대흥루는 그 당시마 해도 사람들이 억수로 마이 왔어. 유명한 사람들 볼라쿠모 의곡사 가모 된다는 말이 있었다쿵께네". 정보살님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신이 나서 막 해 주신다. 그림 한 작품 보고도 이리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시다니......이야기를 듣는 내내 호기심 반, 직접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 반.....

안 그래도 암울한 시기를 함께 보내면서 진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옥고를 치룬 독립운동가들이해방을 맞이하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었는데 많은 이야기를 앉아서 듣게 되었다.의곡사 대흥루는 바람이 찬데 1월이면 그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을텐데.....회합을 가진 후 회광당에 모였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어찌저찌하다 보니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서 수업 시간에 활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한다.나는 상봉2아파트 살때는 아파트 가까운 곳부터 그 흔적을 찾아 나섰던 적도 있다. 시간 나면 아이들과 함께 이리 저리 다닐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선지자들이 아니었으면 어려웠다는 것을 어릴때부터 현장 교육을 통해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살님이 자부심 반, 긍지 반으로 이야기해 주시는 의곡사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손 잡고 오던 곳이어서 결혼 후 가끔씩 들리게 되었던 곳이다. 결혼 후 이 절과 가까운 곳에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올때까지도 남편이 상봉2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어쩌면....진주의 진산을 끼고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주약동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의곡사를 일부러 와야 하는 상황이다. 이전에는 봉산사 옆길로 등산하듯....운동하듯....걸어서 편히 올 수 있었는데....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보살님들 덕에 의곡사를 계속 가야할 정도이다. 

나는 학생들과 수업 중에 진주지역 독립운동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박덕실, 신현수, 김재화와 정용길, 권채권, 강상호, 박용근, 한규상, 심두섭, 김재홍....강영호...등등 학생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학생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현장엘 가보자고 말하기도 하고 책을 내고 싶다는 학생들도 있다. 초등학생이면서도 어찌 이리도 당당하고 확실한지 내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3.1동지회는 살아남은 독립운동가들이 의곡사 대흥루에 앉아 모임을 만들고 국가를 재건하는데 사상적 힘을 모으고 국력을 모으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모두 18명인데 의곡사 주지스님이었던 오제봉스님과 다솔사 스님, 이용규, 권봉근, 박진환, 정몽석, 김태동, 강상호, 이강우, 전인회, 심두섭, 장덕익, 김영조, 정성호, 한규상, 박성오, 천명옥, 정준교 등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허민이 작품으로 남겼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그 그림을 곰탕집에서 만난 것도 새삼...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주는 그런 집이 좀 많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우리 나라 최고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고, 알고 보니 내가 간 집이 독립운동가 집이고....내가 만난 사람이 독립운동하고 연관있는 사람이고....뭐 그런....

새삼 이 지역 독립운동을 다시 생각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