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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의곡사 중수기- 의곡사 중창기록을 서까래에 넣는 장면이 있음-경남기타인문예술생활사/경남예술문화생활사 2014. 10. 25. 07:02
신라 문무왕 5년 2월에 혜통국사(그 당시 국사로 임명되어 많은 활동을 했으나 진언인 주문,즉 말을 통해 불법을 설파한지라 원효대사처럼 문헌을 남기지 않아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여러 차례 사찰 이름도 바뀌었다고 하는데 월명사(월명사라는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찾을 수 없으나 당시 도솔가 등을 지은 월명사의 향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두운 밤에도 세상을 밝게 하는 달처럼 난세에도 희망을 주는 절이거나 달빛이 유난히 밝은 절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신라 왕조의 안녕을 바라고 형세와 지세가 좋은 이곳에서 불심을 하나로 모아 백성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서 혜통국사가 사찰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진다. ), 또한 숭의사라 불리기도 했는데 숭고하고 의로운 절인지, 아니면 의를 숭상하는 절이라는 의미인지 사찰 중수기에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연유로 숭의사라 개칭하게 되었는지 그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진주지역이라는 그 지형적 특성과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지역에 영향을 끼친 굵직한 항쟁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이 지역은 농민운동이나 형평운동 다양한 저항이 있었다)이 둘의 의미로 다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신라애장왕(806년)에 원측선사에 의해 한 차례 중수되었으며, 고려시대 명종 24년에 월명선사에 의해 또 한번 중건되었으나 승병을 기르고 훈련하면서 진주성내에 물자를 보급했던 의곡사는 2차 진주성 전투로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그 이후 병사였던 남이흥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광해군 10년에 당시 주지였선 성간선사를 도와 중건했다. 법당이 협소하여 근대시기인 고종 광무 2년인 1896년 석종 선사가 중건하였으며 이후 한 차례 더 중수하여 70여년을 버텨 오다가 사찰이 신도들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노후화되어 2014년 윤 9월 1일인 10월24일 원담주지스님과 인연이 닿아 7차 중수를 하게 되었다.'경남기타인문예술생활사 > 경남예술문화생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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