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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月: 안도현개천예술제 70년사 꽃을 피우다/문학 2019. 9. 29. 01:52
十一月
안도현
우리나라야,
가을이 큰 소리로 우는구나.
낮술에 취해 돌아가는 농악에
울음 타는 풍년가 한 자락이
징소리 앞에 쓰러진다.
더러는 애비 가슴 아비 앓는 겨레의 땅에
더러는 에미 가슴 아래 우는 겨레의 땅에
여름은 가고 아득한 강물소리여
나락이 익는데
누리에는 무성한 가을을
출렁이는데,
머리 푼 북소리 꽹과리 소리
할머니 눈물 속의 할아버지 헛기침 소리
동지섣달 넉자 세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뚝배기 한 잔 술에 나래펴고 빨려 들어
질경이 풀같이 모질긴
백성 핏줄, 핏줄은 이어가는가.
쓰러지는 옷 소매 흰 넓이 속으로
들어다보면 불도우저에 이마를 밀리리는 韓半島
안타까와라 풀잎들은 햇볕 속에서도 기가 죽고
기죽은 풀잎의 은밀한 밤을 위하여
축제는 꽃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철바람 같은 우리나라야,
모든 것은 한 번 쓰러지기 위해
줄지어 일어나지만
여섯 발 상모가 돌아가는 노래들이
발 걸고 마을 둘레를 감싸면
허재비 키만큼 자란 나락이
허재비 설움만큼 고개 숙이고
먼지 맞은 황톳길 백양나무 가지엔
소매 젖는 새 떼 소리.
흥청거리는 땀 냄새 어루만지면서
나팔 소리 마디 마디 풀려나가는 自由를 따르면
어디쯤서 펼쳐진 가을 벌판을 보는가
소나무 목 잘려 바람만 남은 마을 어귀
백성의 가슴에 영농의
술을 부어 놓고 서서 우는 우리나라야.
한 가마니씩의 가난한 마음들을
가을의 저 소용돌이 속으로
하염없이 젖어 춤추게 하라.
(1978년 제28회 개천예술제 고등부 장원 당선작)
안도현, “개천예술제와 나” 중에서
개천예술제 60년사 pp.75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