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벼리....왜 저곳에서 울고 있을까...강상호선생 묘역 단상도토리묵 이바구/도토리 이바구 2005. 8. 19. 14:37
이사를 오고 난 뒤 내게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새벼리를 걷는 것이다. 걷다 보면 별의별 모습을 보게 된다. 어제는 학생들 가족이 휴가를 많이 가서 나도 휴가를 즐기기로 하고 모처럼 밤길을 걸었다. 모처럼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내게 말을 걸어 본다. 월아산 능선의 웅장한 모습이 어쩌면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기질은 아닌지 뭐.....그런 느낌 아닌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선은 공원 위에서 보는 진주시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시내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진주시내가 품고 있는 역사의 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상호선생 묘역도 가끔 찾는다. 정촌은 예로부터 진양군이었고 금산과 수곡, 대곡과 함께 대표적인 양반의 고장이며 재지사족들이 지역민과 함께 상생을 모색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농통합으로 내 고향 진양군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이곳에서 사라진 역사를 톺을 때가 있다. 석류공원을 지어준 재일교포의 아름다운 보시가 나에게 이런 안식을 제공해 주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 오면서......희끗희끗한 백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강상호선생 묘역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지라 학생들에게도 강상호선생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학생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적이 몇 번 있어서 눈길이 갔다. 순간적으로 나는 혹시 강상호선생님 가족?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발이나 풀이나 있는 길을 따라 나도 발길을 옮겼다. 물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면, 강상호 선생님과는 어떻게 되며 자녀라면 그 어려운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느냐 묻고 싶었다. 그런데.....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할아버지는 성묘가 되지 않은 강상호선생님의 묘를 보며 대성통곡을 했다. 만민의 아버지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내가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만민의 아버지 가신 뒤가 이리 허접하네요. 진작 찾지 못해 죄송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살기 바빠 이제야 찾아 왔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 같은 천민을 사람대접해 준 유일한 어른을 배은망덕하게 잊고 살았습니다. 아니 애써 잊으려고 했습니다. 세상이 그리 만들었어요. 나도 곧 따라 가겠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 곡조가 슬퍼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르신의 슬픈 곡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주머니에서 소주 한병과 명태 한마리를 놓고 잔을 붓는 어르신은 자꾸 쓰러지는 일회용 소주잔을 떨리는 손으로 잡고 술을 붓는다. 잔술을 부으면서 또 우신다. 그 슬픈 곡조가 심장을 때린다. 저승길 앞 두고야 찾아 죄송하다며 연신 우는 모습.......어르신이 살아오신 날에 남겨진 사연이 많겠지만 여기까지 지팡이를 집고 와서 구슬픈 곡조로 향수를 나즈막히 부르신다. 저 눈물을 강상호선생님이 거둬 주길 바라면서 쓸쓸하고 고독한 어르신이 이 밤을 잘 넘기시고 왔던 길 무사히 돌아 가시길 빌며 발길을 옮겼다. 어젯밤 그 일을 보고 난 뒤 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강상호 선생님 묘역에는 의외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밤이나 새벽에 많이 찾아 오신다. 오늘은 돗자리를 하나 갖다 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강상호선생님 묘역에 참배를 오시면 잠시라도 무성한 풀 위가 아닌 돗자리에 앉아 강상호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재회를 하실 수 있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돗자리를 들고 가면서 뙤약볕이 내리 쬐는 이 시간을 일부러 선택해서 새벼리로 향했다. 어젯밤 어르신이 불렀던 정지용의 향수를 들으면서 강상호 선생님 묘역으로 향한다. 어르신이 왜 하필 많고 많은 곡 중에서 이 노래를 헌곡했는지 느끼고 싶었다. 역시나 슬프다. 아프다. 8월의 슬픔이 내 정수박이에 내리 꽂히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함께 울어 주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도토리묵 이바구 > 도토리 이바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도산 안창호 선생의 4대정신인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을 되새기다. (0) 2017.04.24 도토리 이바구... (0) 2015.06.17 정호승 시에 담긴 도토리.... (0) 2014.11.01 도토리 노래 (0) 2014.11.01 도토리묵 이야기를 시작하며...... (0) 201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