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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춤을 생각하며...진주탈춤한마당이 기다려지는 이유
    국문학도 시절의 관심 영역 정리/민속과 연희 그리고 지역 2012. 2. 9. 18:19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외워서라도 알아야 했던 것이

    한국의 모든 문화를 다루는 국문학의 이해이다.

    민속극도 그 중 하나이다. 괴뢰, 곽독...이름도 어려웠던 시절...

    지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다시 이 부분을 다루게 되면서

    대학시절 밤 세워 가며 헌법 법전처럼 들고 다녔던

    조동일 선생의 한국문학통사를 다시 훑으면서

    우리의 전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전통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왜 사라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연구해야 하는지 되새기기도 한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한국철학을 접하게 되고

    이것이 국문학도 시절 다루었던

    시가문학과 패관문학,신화, 전설, 민담 속에 한국정신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더 많은 우리의 것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가 어쩌면 대학 4년 내내 접했던

    국문학의 모든 것이 한국철학사를 이해하는 근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조선전기에도 꼭두각시놀음과 탈춤이 민속극으로 민간에 전승되었다. 성현의 관극시에 괴뢰라 불렸던 꼭두각시 놀음이 언급되고 있지만 고려시대 이규보의 문헌에는 이에 관련된 자료가 없다.

    탈춤은 마을 굿 행사 일환으로 농촌에서 자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성지방 성황단을 소개하고 있다. 지방민이 언제나 5월 1일에서 5일까지 두 패로 나뉘어서 섬기는 신의 모습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다투어 술과 음식을 장만하고 고사를 올린다.는 기록이 있다.

    나인은 행사를 마치고 백희를 갖추어 벌인다고 했다. 단오무렵...행사는 재앙을 물리치는 굿이다. 들고 다니는 신의 모습이야 서낭대같은 것이다. 나인이라고 한 사람들은 나례와 같은 것을 맡았다해서 그렇게 불렀지만 농악대이다. 굿을 하는 절차를 마치고 벌인 백희에는 탈춤이 포함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고성오광대로 발전했다. 이 기록은 한국문학통사에서 확인한 것이다.

    고성오광대.....

    개천예술제때도 연희되었던 것이 고성오광대이고 진주탈춤마당에도 고성오광대를 볼 수 있었다. 진주에서 개최되는 5월의 대표적인 축제로 감히 나는 진주탈춤한마당을 꼽는다. 대학때 배운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비단으로 신의 탈을 만들어 당집에다 넣어두면 섣달 스무날 이후에 신이 고을 사람에게 하강해서 그 탈을 쓰고 아내 및 읍촌으로 돌아 다니며 논다고 한 것을 보면 어릴 적 내가 우리 동네에서 본 것들도 이런 아류였음이 짐작가능하다.

    서낭대만으로는 부족해서 탈을 고안해 냈고 평소에는 당집에 모셔놓고 신으로 섬기고 굿을 할때면 신이 하강해서 논다고 했으니 이는 신라시대 처용탈과 어느 부분은 접점이 보이기도 한다.


    경북 하회 탈춤,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쪽은 오광대가, 한쪽은 동래 야류가 발전했다. 강릉지방 관노희...북청 사자놀음도 초보적인 단계의 탈춤과 관련이 된다. 조선후기에 탈춤이 본격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전에는 탈춤이 어디에서나 그런 정도의 단순한 내용만 갖추고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얻기 위한 굿놀이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다고 한다. 이는 설을 지내고 보름동안 동네에서 계속되었던 지신밟기에도 확인된다. 시어머님 말씀으로도 설에 시고모부가 처갓집에 오면 얼추 한달을 집에 머물면서 이런 것들을 즐겼다하니 굿놀이는 어느 마을에나 있었던 것 같다.

    동제가 아직도 남아 있으니 동네마다 차이는 있지만 동네에서 재비를 불러 이런 놀이를 했다는 것도 이해된다.

    이제신의 청강쇄어를 눈여겨 볼 필요도 있겠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도 탈을 쓴 광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귀면이 그것이다......백제 미마지가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과 같은 불교극이 어쩌면 탈춤과 접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조동일 선생의 주장 있고....서울 근처의 산대놀이나 황해도 해서탈춤에서 발견되는 노장이 양반과 대등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사원에서 축출된 잡승들이 광대로 가담했다고 하니 승려의 풍자는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유랑광대의 탈춤.....그리고 남사당패.....부부 두 사람만 동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특수한 경우에는 탈춤을 둘이서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있다.

    다시

    국문학도 시절 관심있었던 것들을 찾아보는 이유는 행복이다.

    인생 뭐 별 거 있나! 보고 싶은 것 보고, 즐기고 싶은 것 즐기면 되는 거니까...

    진주탈춤이 생기면서부터

    공연문화가 부족한 진주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으니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탈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대학 다니면서 배웠던 민속극을 다시 공부하는 것도

    행복이다.

    봄이 되면 화전놀이가듯

    아이들 손잡고 문화예술회관 야외 무대에 앉아

    박수치며 공연을 보면서 즐기던 시간이 주어지니 얼마나 행

    복한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은근슬쩍

    권하기도 한다.

    진주탈춤한마당 구경 가라고....

    숙제까지 내어 주기도 한다.


    분노 조절이 힘든 고등학생들에게는

    좀 무거운 주제를 주기도 한다.

    탈춤한마당을 구경하고 인생을 생각해 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요새 인기있는 혜민스님의 글을 들려 주기도 한다.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혜민스님의 말을 옮겨 본다. .

    인생 별게 아니다.. 내 평소의 습관이 결국 인생이다.

     

    화가 올라왔을때 그 화를 한발자국 떨어져서 TV드라마 보듯 3분정도만 조용히 관해라. 그러면 그 화가 자기가 알아서 변해서 차츰 소멸된다. 화를 억누르거나 폭발시키지 말고 올라온 화를 조용히 지켜봐 사라짐을 관해라.

    가슴에 담아둔 화는 분노로 풀지 말고 대화로 풀어야 좋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이야기, 서운했던 말들을 신경질과 함께 분노로 폭발하지 말고 조근조근 조리있게 이야기 하세요. 되도록이면 서로 괜찮을때...

     

    서운한 마음이 조금 지나면 꽁하게 되고 꽁한 것이 더 지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화로 변해서 그 화가 풀리지 않으면 한이 된다. 그러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때 서운했다고 말로써 즉시 풀어야 가장 좋다.

     

    나랑 잘 맞지 않아서 원수처럼 싸워서 절교를 했어도 꼭 기억하자. 나랑 인연이 잘 맞지 않아서 이렇게 틀어진 것이지 사람 자체가 원래 나쁜 것은 아닐거라는 점, 아무리 좋은 사람도 인연이 아니면 나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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