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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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추억이라는 이름카테고리 없음 2021. 9. 7. 01:01
화가의 일생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화가가 꽁꽁꽁 숨겨 둔 생의 일기장을 들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술대회때 자기 마음의 피맺힘을 찍어 그림으로 그렸다고 말하는 신달자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1951년... 민족전쟁... 여성... 이혼...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운명이라 받아들이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 감히 외국으로 떠날 용기를 내었던 그.... 나는 그의 초월 사상을 좋아한다. 아니 솔직히 그의 호인 일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예술철학을 더 좋아한다. 남과 여로 구분해서 차별하던 시대를 그림으로 저항했고 동과 서... 직장 상사와 부하... 상하 관계의 부정성을 그림으로 깨트리려고 했다. 이것은 바로 진주가 부여잡아야 할 형평운동이나 평등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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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화백과 결혼이주여성 동기부여카테고리 없음 2021. 7. 27. 20:21
https://www.iscs.co.kr/ch8/?bct=04&mct=01&Chann_par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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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이성자 화백 관련 연구를 시작했고 2021년에야 등재지에 투고 되었다.2016이성자화백 연구/관련논문 2021. 6. 9. 21:50
나는 나 스스로 경남지역문화연구자라고 자부하는 편이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내가 내 다음 세대에 알려 주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몇 년이고 파고들기 때문에 하나의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많은 진통을 겪게 된다. 더군다나 나같이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관해 깊이 빠졌다가 박사과정에서는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에 깊이 빠져 인간 본성을 고민하게 된 경우는 더 많은 고통이 따른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배웠고 레비나스에게서 깨달았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문화현장을 몰랐다. 대학원문화콘텐츠학과는 순전히 문화현장을 알고 싶어서 입학을 하게 되었었다. 아마도.... 내가 연구자의 길을 가고자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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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화백탄신100주년 기념 행사의 마지막 이야기들경남문화사/경남의미술가 2019. 1. 27. 11:41
2018년은 이성자화백 탄신 100주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자화백을 아는 대중들이 많지 않았기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국내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국내에서는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국내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성자 화백이 나이 서른이 넘어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곳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한국 화단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수많은 국내 화가들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활동을 하고 그곳에서 한국인 화가들끼리도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자화백은 한국인 화가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저평가 당했습니다. 한국인 화가들이 '이성자화백'이라는 명칭대신 '마담 리'라고 부른데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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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무 이성자화백 탄신 100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며글나라의 중년기/무제 2018. 6. 30. 13:04
이성자화백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것은 대학원 철학과에서 예술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미학을 접하고 삶을 예술로 표현한 예술가에 관심을 가지면서였다. 이성자 화백을 1999년 처음 접하고도 몇 년이 흐른 뒤이다. 소크라테스이전의 철학자들의 예술론과 들뢰즈와 라캉.....라이프니츠... 대륙합리론자들과 영국경험론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예술론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접하면서 예술 그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했던 시기이고,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레비나스를 느끼며 나 스스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시기였고 문화예술분야의 여러 문제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문화와 가치"가 던진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문화예술인들의 삶에 유난히 관심이 있었던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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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화백 작품을 접하다.경남문화사/경남의미술가 2011. 4. 20. 22:23
예술철학에서 야스퍼스 창조적 직관 자료를 찾으려고 도서관에 왔다. 프랑스어를 하는 선생님과 함께 도서관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이성자 화백 작품을 찾아 보았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도 이성자화백 이야기를 하니 호기심을 가지신다. 이성자화백은 1918년 태어나서 2009년 봄에 타계했다. 그의 타계로 나의 심장에 들어온 인물 중 한 명이다. 관심이 갔던 이유는 페미니즘과 디아스포라를 고민하면서 여성의 삶을 살펴 보는 과정에서 천경자를 다루려는데 이성자가 더 기가 막힌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여 성공한 인물이라는 것을 접했지만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과 같이 예술철학에서 이성자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학적 관점을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