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화융합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경남 18개 시군의 문화사를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로 분류하고 다시 지역을 지리적 특수성에 기반해서 경남을 나누어 보았다. 과거에야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이해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경우 설명이 되지 않은 문화적 특성이 많다. 2014년 결혼이주여성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통영인문학을 기반으로 통영꿀방을 적용한 직업교육을 진행하면서 더 확고해 진 것이 바로 지리적 특수성 기반 지역나누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농경문화사, 산림문화사, 해양문화사, 융복합적 문화사로 분류하여 그 안에서 인문사, 예술사, 샐활사로 분류하여 살피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내 나름의 연구 패턴이 생겼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를 "삶의 총체"라고 정의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문화의 개별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체성을 말해야 하는 지역문화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문화를 "진, 선, 미를 추구하는 과정에 남긴 모든 것"으로 정의한다. 그럴 경우 나의 문화사 분류는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가 핵심이 된다.
인문사는 철저하게 철학적 사유에 기반해서 이해해 온 나의 학문적 토양이 깔려 있으며 인간이 眞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확인시키는 근거가 된다. 생활사는 善을 행함으로써 공동체의 중요성과 가치, 나와 너, 우리가 사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美는 예술사를 통해 우리의 삶이 드러나는 다양한 양태이다. 나의 이러한 주장은 꽤 오랜 시간 학계에 문을 두드려 나만의 주장으로 자리잡았다.
생활사는 내가 뼛속까지 경남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경남이 잘못하면 목소리를 내게 되고 잘 되면 기분이 참 좋다.
예술사의 경우 아름다운 경남의 토대가 되기에 여러가지 결에서 보아야 한다. 경남에서 반드시 조명해야 할 것이 "시초" 또는 "최초"라는 것이 갖는 상징성이다. 이성자화백을 조명하고 싶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야 그녀와 같은 나이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내게 깨우쳐서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인물이어서 의미있는 인물이다. 가장 먼저 이성자화백을 학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그의 철학적 사유는 단지 여성 한 개인의 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으나 박사학위 주제로 "이성자화백과 디아스포라 재의미화" 연구를 하고 싶었으나 보기 좋게 퇴짜 맞았다. 그래서 소논문으로 계속 말하려고 한다. 진주라는 지역을 떠나 예술계를 보면 어떻게든 진주는 한국 최초, 또는 경남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경남 최초의 서양화가 강신호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가 이훈우, 미술동인지를 만든 강국진 등 수없이 많다.
강국진은 1939년 태어나 1992년 사망했는데 1965년 한국 최초의 행위 예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미술동인지인 '논꼴아트'를 창간했다. 1967년에는 청년작가 연립전을 창설하기도 했다. 미술 비평가들 사이에는 1970년대초부터 설치미술과 판화작업, 입체작업에 집중하여 시대정신과 파격적인 실험정신을 주도하였기에 한국현대미술의 기초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를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예술사에서 경남정신의 핵을 시작했기 때문이고 강신호, 강국진, 이성자,강영호 등이 추구했던 美의 본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정신의 핵심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를 진주에서 찾는 이유다.
2019년 9월 19일 밤 12시를 넘기며 이성자화백 연구 마무리를 위해 마지막 엔터키를 누른다. 다음 연구 대상으로 강신호와 강영호, 강상호, 이훈우, 강국진을 고민하고 있다.
경남문화사의 핵인 예술사에서 현대의 접점에 있는 강국진을 생각하며 주저리주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