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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천예술제에 대한 나의 단상....기록으로 남기기
    개천예술제 70년사 꽃을 피우다/기타 2011. 10. 12. 09:04

    개천예술제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

    그리고 끝남을 알리는 불꽃놀이......

    내게 개천예술제 불꽃놀이는 꽃불놀이라 불렀던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많다.


    나는 진주에서 나고 자랐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진양군에서 태어났다.

    아직도 어디 출신이요 물어 보면 나는 진양군 태생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개천예술제를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개천예술제는 1049년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예술제이다.

    즉 전통적인 축제하고는 조금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축제이다.

    예술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축제의 시작인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는 개천예술제의 관람객이었고 추억하는 향수자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개천예술제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문헌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신문을 보고

    학교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았다.

    깜짝 놀란 것은!!!!!!

    개천예술제의 기록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천예술제의 기록이 아니라 세계의 축제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물이다.

    세계가 보존해야 할 기록 유산이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

    내가 어릴 적 기억했던 개천예술제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추수가 끝나면

    조금 넉넉한 할아버지를 따라

    너우니 구경도 하고 진주에서 개최되는 예술제를 구경할 수 있었기에

    내 어릴적 개천예술제는 삼대의 전설이 켜켜이 묻어 있기도 했다.

    생전 처음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죽을 보고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할머니 손잡고 성수장여관 앞으로 가다보면 하늘에서 천둥이 몇 번 울리면

    마치 공사판에서 땜질할 때 내뿜는 불꽃처럼 하늘에는 나를 향해 꽃불이 쏟아져 내렸다.

    공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불꽃이 내 머리에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할머니는 두려워하는 나를 안고 인파를 헤집고 더 재미있는 구경있으니

    쪼매마 참아라 하시며 질주 하셨었다.

    그 기억이 엊그제인냥 생생한 덕택에 나는 개천예술제의 꽃불에서 시작된 두려움의 기억조차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이벤트를 항상 꿈꾸어 왔었다.

    하지만 그 이벤트는 여차없이 나의 추억과 기억에서 멀어지게 한다.

    점점 화려해지고 긴장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망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잘 살았던 내 할아버지와 장남이었던 큰아버지의 문화는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 진주이다.

    그런데 장자계승의 최대 피해자인 막내아들인 내 아버지의 가난한 문화는 사라진 곳이 진주이다.

    아니 개천예술제이다.

    가난하면서도 고급문화를 누린 나의 문화는 있는가?

    나는 감히 말한다.

    있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없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뀐 10년 후에는 개천예술제가 지금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새로운 시작을 해 보려고 한다.

    적어도 100년을 이어가는 세계적인 예술제가 되기 위해서 개천예술제는 잘살았던 나의 할아버지 문화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의 아버지 문화도, 양 문화를 걸쳐있는 나의 문화도 다음 세대에게 전이될 수 있기를 빌며 개천예술제의 안타까움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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