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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상호선생님 묘역을 다녀와서....선생님께 빌었다. 후손을 만나게 해 달라고....
    진주로 물들다/인문사 2015. 1. 7. 10:45

    오늘은 2015년 1월 7일이다. 정확하게 그때는 음력을 사용했을터이니 11월 17일 아직 2014년이다.

    그동안 힘들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시 백촌강상호선생님을 뵈었다.

    1990년대 초 학교 가까이로 이사를 오기 위해 주변의 역사문화 자산을 확인하고

    가끔씩 들렀던 석류공원에 갔다가 항상 들리는 곳이 바로 이곳 백촌강상호선생님 묘역이다.

    10년 이상 이맘때면 계속 오는 곳이 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데

    가끔은 한잔의 술이 놓여 있기도 하고

    때로는 과일이 놓여 있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과자를 놓고 가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제대로 치워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동물들이 혹시 

    선생님의 묘를 헤칠까 걱정이 되어 올때마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와서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주로 해가 바뀌는 년초에는 열일을 제쳐 두고

    가는데 최근에는 2014년 1월 7일(음력 12월 7일) 오늘도 나는 백촌강상호선생님 묘역엘 갔다.

    이슬이 채 깨지 않은 건초더미 사이로 

    빼꼼하게 풀들이 자란다. 

    어쩌면 백촌강상호선생님은

    저 풀을 통해 백정의 삶, 의지, 생명을 느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내가 대학원문화콘텐츠학과에서는 인문학의 근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고

    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서 선생님의 묘소를 찾았다.

    경남문화융합아카이브를 통해 경남의 인문사의 한 핵인 형평운동과 관련한 

    것들을 말하는데 제약이 따름을 발견했다. 

    어떻게 하면 활용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 고민한 지난 3년의 시간이 허무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래서 오늘은 

    포기해야 할지, 계속 전진해야 할지 갈등하면서 백촌선생을 찾았다.

    경남문화융합아카이브 연구를 하면서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로 분류하였다.

    철학과에서부터 나는 이미 경남의 문화사를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로 분류해서

    스토리텔링 개발 방안을 모색해 왔고

    철학과에서는 스토리텔링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고심 끝에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에 기반해서

    경남의 인문사를 말하기 위해,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서

    경남의 문화사를 말하기 위해 문화콘텐츠학과에 다시 입학을 했다.

    수많은 차별을 겪으면서도 철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겪는

    고충을 견뎌 온 시간에 대한 회한도 있었지만

    문화콘텐츠학과에서도 석사때 학위를 받았던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 개념과

    박사과정에서 3년동안 고민한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에 기반한 윤리학을

    혼자 연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어서 2013년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택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문화콘텐츠학과는 내가 생각한 그런 학과가 아니었다.

    생긴지 얼마 안 된 학과에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었다.

    깨트릴 수 없는 탄탄한 뭔가가 학과에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견뎌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경남문화융합아카이브를 구축하겠다는 일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 한 가운데 전국 최초로 있었던 형평운동과 그 정신,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고민했던 전국 최초의 소년운동.....

    그리고 동학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된 진주농민항쟁과 그 정신,

    그리고 이 지역에 있었던 3.1만세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다양한 스토리....

    그 안에 강상호, 이학찬, 장지필, 강영호, 강신호선생님이 있다. 

    내가 1999년 이성자 화백에게서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다면 

    이들은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포기하지 말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 분들이다.

    학교 가까이에 백촌선생님의 묘역이 있어서 자주 찾는다.

    내가 이 겨울에 쓸쓸한 선생님의 묘역을 가끔씩 찾는 이유는 무성하게 자란

    풀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손 봐 주지 않는 쓸쓸한 묘역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면 가슴이 시리기 때문에

    어느 순간 이렇게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겨울에 선생님의 묘역을 더 찾게 된다.

    새로운 해로 바뀌었으나 바뀌지 않은 해인 어제 백촌강상호선생님 묘역을 어제 다녀왔다.

    내가 올리는 술 한잔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강상호선생님의 후손을 내게 보내 주십사하고 오늘은 내가 간절하게 빌었다.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어 본다.

    내가 강상호선생님의 후손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연구 영역 때문이다. 

    경남문화융합아카이브에 이것을 어떻게 담아야 할 지 고민 중이다.

    독자적인 연구를 하고 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엉터리가 많고 고증되지 않은 것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강상호선생님의 후손이라도 찾아 나서야 할 판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이 걸릴 것은 뻔하고...

    포기는 하고 싶지 않고...

    제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강상호 선생님께 술 한잔 올리면서

    1년, 아니 10년 뒤에라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논문을 통해 꼭 말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2023년에는 끝내고 싶다.

    2023년 4월에 등재된다면 형평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결이 다르기 때문에 학위 논문에 넣지 말고 따로 떼어서 등재지에 실을 계획이다.

    잘 될 수 있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100주년 이전에는 꼭 해내고 말리라....

    나 스스로 백촌강상호선생님께 약속을 하고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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