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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암정식을 다시 생각하다.
    진주로 물들다/인문사 2013. 3. 31. 08:47

     시댁 선산의 공식 명칭은 구곡산이다.

    구곡산은 명암정식과 연관이 있다.

    구곡산의 요소요소에

     명암은 무이구곡을 만들어

    글로 새겼기 때문이다.

    올라 가 보면 마음이 강건해 진다.

    오늘 다시

    명암정식을 생각하다.
    명암전을 지어 자신을 단도리했던
    그는 잘 알다시피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던 인물이며 한때 경남 유학의 본거지였던 향교가 있는 진주 옥봉에서 태어났다.
    촉석루 아래 바위에 그의 종조부로 알려진 승지공이 새긴 '의암'이라는 글을 보고 의암시를 지은 인물이다. 임진왜란 의병장이었던 충의공 정문부의 동생이 명암의 증조부인 진사 문익이다. 명암 정식의 의암시가 아니었으면 논개는 세상이 알려지지 않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글로 인해 비로소 논개가 조정과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명암 정식을 잊고 있다.
    논개만 주야장창 찬양하고
    논개의 정신만 기릴려고 한다.
    하기사
    인간사가 다 그렇지만
    큰 인물 뒤에는 조력자가 있지만 그 조력자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 것이 사람 세상이다.
    그렇듯이
    우리는 자신이 성공하거나 알려지고 유명해 지고 특정 지위에 올라도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다는 것에는 무심하다. 어쩌면 명암 정식이 하동 세이암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은혜를 망각한다.
    구곡산 무이구곡 곳곳에그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아직까지 산청은 그것을 보존하는데 손을 놓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하여 진주가 그의 정신을 기리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로지 남명만 있고 논개만 있을 뿐이다. 촉석루 중수기를 지은 정식은 잊은 듯하고 의암사적비를 세운 그의 정신은 망각하고 있다.
    매화와 대나무를 심고 계수나무와 소나무, 난초와 국화를 심었다. 가정 집 담장으로 쓰이기도 하고 뭐.....집집이 찾아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견되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식의 흔적을 찾는 일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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