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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역사이야기 4탄 -석굴암과 토함산 이야기
    경북과 삼국유사/경주이야기 2015. 4. 19. 15:47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지키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임을 말해 주어야 할 것은 어른 세대의 몫입니다. -

     

     

     

     석굴암 -  최재호 작시
    토함산 잦은고개 돌아보면 쪽빛동해
    낙락한 장송등걸 다래넝쿨 휘감기고
    다람쥐 자로 앞질러 발을 멎게 하여라

     

    한고비 또한 고비 올라서면 넓은한계
    쓰러진 신라천년 꿈도 서려 감도는가
    막달아 아늑한 여기 굴이 하나 열렸네

     

    칡뿌리 엉긴흙을 둘러막은 십육나한
    차가운 이끼속에 푸른 숨결 들려오고
    연좌에 앉으신 님은 웃음마저 좋으셔라.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복을 교복으로 착용하고 있는

    진주 삼현여고를 설립한 최재호 선생이 쓴 시에

    이수인 선생이 곡을 붙인 가곡 석굴암...........

    언제 들어도 평온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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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5대 명산 중 한 곳인 토함산에 자리잡은 석굴암은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당시에는 석불사였다고 한다.

    일연은 석굴암에 대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1. " 김대성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었는데 밭을 보시한 공덕으로 김문량의 아들로 환생했다. (김문량은 그 당시 대아손이었다.) 토함산에서 곰 사냥 중 마음에 감동을 느끼게 되어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세웠다. 그리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세웠다." 이 석불사가 석굴암의 옛 이름이다. 아쉽게도 창건 당시 형태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가 없다.

     

    2. 신라 4대왕인 석탈해가 왕자였던 시절토함산에서 사냥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하루는 사냥을 하던 도중 목이 말라 신하에게 물을 떠오라 했다.

    이 신하는 토함산을 헤매다가 동해가 바라보이는 큰 바위 아래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하가 표주박에 물을 담아 오다가 목이 말라 왕자가 마시기 전에 자신이 한 모금 마시려고 입을 갖다 대자 표주박에 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신하는 입에 표주박이 붙은 채로 왕자에게 갔고, 그 신하는 왕자에게

    "이후부터는 먼곳에서나 가까운 곳에서나 절대로 먼저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그랬더니 표주박에 붙어 있던 입이 거짓말처럼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 이 샘물을 '요내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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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때 본존불 뒤쪽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대리석탑과 감실 내의 불상 두 채가 분실되었으며 일본인들이 세 차례 보수 공사를 이 시기에 했었는데

    이 보수 공사 시기에

    일본인들이 가져 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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