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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살차.....이제 아버님께 작설차 비비는 법을 더 이상 배울 수 없다.도토리묵 이바구/도토리묵은 인생이다. 2005. 6. 7. 15:08
폐섬유증 앓고 계시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1년 전.......
매주 주말이면 할머니댁 가는 아이들과 처음으로 가족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이 한 장의 사진이 우리 가족에게는 또다른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시아버님은 시어머님께서 따 오시는 녹차(시아버님은 작살이라고 하셨다)를
비비셨다. 꼬마가 쥐면 딱 한 줌 될 정도로 비비셨는데 내게 가르치실때는
부서지면 풋내나서 못쓴다고 하시면서 한 방향으로 비비게 하셨다.
어쩌다 한 번씩 하는 나는 손 목이 아파서 꽤를 부리기도 했다.
찻물이 자박하게 나올때 까지 비비야 차맛이 좋다 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셨다.
사진 속 아이들이 뱃속에 있을때 배웠으니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나는 시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시는대로 양 손으로
손 끝에 힘을 너무 세게도 안 되고....
너무 약하게 안 되고.....
그렇게 녹차를 주무르고 나면
최대한 얇게 방바닥에 펴서 말리셨다.
건조는 어머님께서 책임을 지셨다.
두 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가족 여행을 와서야 아버님께서 녹차 비비시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잊어버리고....
산소호흡기에 기대어 방에 누워 계시는 시아버님 모습을 뵈면서
내게 자상하게 차 비비는 법 가르쳐 주시던 때로 돌아 오실 수 있게
마음속으로 비는 일만 하게 되었다.
나는 녹차를 따고 나면 두드러기가 심하게 일어난다.
처음에는 그것이 녹차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더욱 심해졌는데
아이들이 크면서
녹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알러지가 고통스러워 온 몸이 피가 나도록 박박 긁어 대다가
아이들한테 화를 내기도 했다.
어쩐 일인지 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온 곳이
서울 한 복판이다.
시아버님께서 산소호흡기를 꼽고 계시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 여행을 서울로 왔으니
불효를 저지른 샘이다.
다니는 내내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시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이 걸려서
울컥했다.
결혼 후 첫 가족 여행에
맛있는 음식점을 가면
아버님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남산 케이블카를 타면서
알았다.
아버님은 작설차 비비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시면서
삶을 알게 하시고 싶었다는 것을.....
작설차 비비는 것이
아이들 키우는 것처럼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아버님께 작설차 비비는 법을 더 이상 배울 수가 없다.
지리산 작설차 맛있는 이유가
아버님의 비비는 기술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아버님께 죄송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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